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WTO 파고 어떻게 넘을까/자몽 제소 계기로 본 한미 통상마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WTO 파고 어떻게 넘을까/자몽 제소 계기로 본 한미 통상마찰

입력
1995.04.13 00:00
0 0

◎식품 유통기한·지재권·차개방등/양국사이 마찰불씨 줄줄이 대기 미국이 최근 과일류 통관문제를 걸어 한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다. 오렌지 포도등 미농산물의 통관업무를 의도적으로 지연시켰다는 것이 제소의 이유다. 통상관계에서는 우방이 없다. 미국은 한국을 철저히 경쟁상대자로 여기고 있다. 미국의 이런 움직임은 이미 오래전부터 계속돼왔다는 점에서 새삼 놀랄 일이 아니다. 미국뿐만이 아니다. 유럽연합(EU)를 비롯한 선진국들의 최근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신청으로 선진국을 향한 발돋움을 시작한 한국이 사방에서 밀려드는 통상압력의 파고에 고립되어가는 형국이다. 미국의 제소를 계기로 WTO시대의 통상현안을 알아보고 한국의 대응방안을 모색해 본다.<이재렬 기자>

◎한국의 입장/양수길 교통개발연구원장/“시정조치 통보불구 미제소

「더많은것 얻기」전략 의구심”

 지난 2월 미국 플로리다산 감귤류 약 5만kg(4만6천달러어치)가 부산세관에서 17일간에 걸쳐 잔류농약에 관한 정밀검사를 받고 통관되었다. 그런데 이과정에서 30%에 가까운 양이 썩어버렸다.

 미국정부는 이를 계기로 신선한 과일·채소류에 대한 한국의 통관 및 검사절차가 WTO규정에 반하여 수입제한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절차의 개선을 요구하면서 이를 관철하기 위해 WTO분쟁해결절차에 따른 한국과의 양자간 협의를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이 협의가 여의치 않은 경우에는 제3자들로 구성되는 패널에 의한 조사 및 권고가 이루어지고 사태의 추이에 따라서는 한국쪽에서의 시정조치가 뒤따르든지 미국에 의한 보복관세 부과조치가 이루어질 것이다.

 미국정부의 이와 같은 처사를 우리는 어떻게 보아햐 할 것인가. 지금 국내 언론은 미국정부에 대해 일제히 포문을 열고 있다. 지나친 처사라는 것이다. 한국인의 건강을 무시하고 한국민에게 미국의 농약을 먹으라고 강요하는 처사가 아니냐는 것이다.

 필자는 한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와 같은 시각을 받아들이고 싶은 생각이다. 유감스럽기도 하다. 지난 수년간 우리나라는 전례없이 과감한 속도로 시장개방을 해왔다. 그런데도 미국은 우리 정부의 이같은 개방노력을 인정하기는커녕 WTO의 첫번째 피소국으로 우리나라를 선택했다.

 우리나라는 농산물의 시장개방에도 착수했다. WTO사무차장도 배출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을 신청해 놓고 있기도 하다. 선진국에 진입하기 위한 준비들이고 시장개방도 이미 상당부분 진척돼 있는 상태다.

 그러나 미국은 WTO 첫 제소국으로 우리나라를 골랐다. 문제가 된 자몽에 대해서는 우리 정부가 이미 시정조치내용을 미국에 통보해놓고 시행까지 들어간 상황이었다. 이같은 점으로 미루어 미국이 한국을 WTO에 제소한 것이 타당하고 바람직하며, 불가피한 일이었던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일반 국민으로서는 미국의 이같은 일련의 조치가 앞으로 더 많은 것을 얻어내기 위한 전략이 아닌가 의구심마저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 이르게 된 것에 대해 우리 정부의 통상협상에 대해서도 분명 짚고 넘어가야 한다. 미국의 이번 조치를 부당하다고만 몰아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핵심적 쟁점은 세관에서의 검사과정이 과연 국민건강보호라는 원래의 취지에 맞게 이루어졌느냐, 특히 정부의 행정능력한계내에서 비교적 효과적이고 신속하게 이루어졌느냐, 아니면 국내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검사절차를 고의적인 통관지연 수단으로 이용했느냐 하는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해 우리는 전자의 경우로 믿고 싶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입장과 논리가 우리 자신에 의해서만 수용되는데 그치지 말고 국제사회에서도 수용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국제화 개방화 세계화의 현실속에서는 우리끼리 똘똘 뭉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국제적으로 객관타당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지금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시장개방에 대한 인식은 매우 좋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한국의 WTO피소의 저변에 깔린, 보다 더 큰 문제다. 소시지 육류 초콜릿 팝콘등 유사한 사례가 많다는 것이 외국에서 보는 관점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WTO피소 사실은 통상문제라는 빙산의 일각이라고도 볼 수 있다. 우리로서는 WTO라는 다자기구에서 미국의 일방적 압력을 피할 수 있는 이점을 얻은 대신 국제사회의 다자적 심판을 받게되는 부담이 생긴 것이다.

 여기에는 교훈이 있다. WTO가 주도하는 다자주의시대를 맞아 우리는 우리의 시장개방정책과 그에 수반되는 실무적 제도와 관행을 총점검하여 국제적 정당성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시장개방이 어려운 경우 처음부처 이를 받아들이지 말고 반면 이미 시장개방을 약속한 경우에는 이를 공정하게 집행해야 할 것이다. 그것도 안되는 경우에는 흥분할 것 없이 국제적 절차에 따른 제재조치를 감수해야 할 것이다. WTO피소 자체를 겁낼 필요는 없다.

◎미국의 입장/김석한 재미변호사/“대한 무역협상 제자리 불만 통상현안 일괄타결 저의도”

 미국이 지난 4일 자국산 감귤류에 대한 통관지연을 이유로 한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한 배경에는 한국에 대한 미국관리들의 좌절감이 짙게 깔려있다.

 미관리들의 좌절감은 세 갈래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한국과의 무역협상을 너무 오랫동안 끌어왔다는 자성론이 일고 있는 것이다. 미국관리들은 감귤류의 통관문제는 물론이고 통신 금융 조달시장등 거의 모든 분야에 걸친 시장개방협상이 수년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해 왔다. 둘째, 한국정부내 관료주의에 대한 좌절감이다. 수입정책과 이를 시행·감독하는 부처가 여럿인데다 협상창구마저 복잡하다. 게다가 담당자마저 수시로 바뀌기 때문에 누구를 상대로 협상을 해야 일이 제대로 풀릴지를 알 수 없다는 지적이다. 셋째, 미국은 한국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간의 중간위치에서 『꿩도 먹고 알도 먹으려 한다』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서두르고 있을 정도로 개발된 한국이 무역상의 책임을 이행함에 있어서는 개도국의 입장을 취하려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이같은 대한관은 냉전이후 변화된 미국의 새로운 대외통상정책에 비춰볼때 이해할만하다. 

  즉, 최근 가중되는 대한 시장개방압력은 클린턴행정부가 추구해온 「경제안보」우선의 논리가 실행에 옮겨지고 있는데 불과한 것이다. 

 클린턴행정부는 야당인사들은 물론 당내외의 보호무역주의자들에게 그가 해외시장확대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줘야 하는 정치적 부담을 안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때 미무역대표부(USTR)가 이번에 한국을 WTO에 제소한 사실은 놀랄 일이 아니다.

 USTR가 한국을 대상으로 삼은 배경은 몇가지로 분석이 가능하다.

 첫째, 이들은 감귤류건에 대해 승소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 감귤류건은 사안이 구체적인데다가 위험부담도 덜하기 때문에 『한번 해볼만하다』는 판단을 내렸음이 틀림없어 보인다. 둘째, 감귤류 원산지인 플로리다주 생산업자들의 막강한 로비가 주효했다. 플로리다주가 다수의 선거인단을 보유한 주라는 사실도 우연은 아니다. 셋째, 이번 기회에 농산물문제 뿐만 아니라 다른 통상현안에 대해서도 일괄타결을 유도해 보자는 부수적인 효과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쌍무협상으로 시간을 끌어온 이 문제를 다자간협상무대로 끌어내 한국에 대한 압력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속셈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넷째,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를 상대로 한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다는 것이다. 우루과이라운드를 비롯한 다자간무역협상은 물론 세계 각국과 수많은 쌍무협상을 거의 마무리지은 미국은 올해부터 그러한 협상을 빈틈없이 이행하는데 총력을 기울일 것임을 공언하고 있다. 미국은 일본의 자동차시장, 중국의 투자장벽, 캐나다의 목재시장등 굵직한 통상이슈에 대해서는 협상을 통한 해결을 계속하면서도 지극히 사소한 이슈인 감귤류 통관문제를 WTO로 끌고 가 한국정부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미국산 육류의 유통기한문제를 트집잡아 내달까지 협상에 진전이 없으면 WTO로 가져가겠다는 위협도 마찬가지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한국은 이번 사태에서 몇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우선 미국은 과거와는 달리 교역문제는 어디까지나 교역문제일뿐이라는 시각에서 다루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해 그들의 경제적 이해가 걸려 있다고 판달될 경우에는 전통적인 의미의 한미관계가 다소 손상을 입더라도 시장개방의 원칙을 관철시키려 들 것이라는 것이다. 그 다음, 통상문제는 분야별 전문가들에게 해결을 맡겨야 할 시점이 됐다.

 한국과 문화적 법률적 배경이 다른 미국이 자기네 제도와 관행에 입각해 제기하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그에 필적하는 논리를 개발하고 미국조야에 영향력있는 세력을 심어두는 수밖에 없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