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지금부터 꼭 20년후의 한국은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 것인가? 계획대로라면 미국 일본 유럽과 거의 동시에 한국에도 초고속정보통신망이 완성되고 아시아권역의 통신망, 대양을 횡단하는 국제통신망과 연결되어 명실공히 지구정보고속도로의 그물망속에 편입된다. 망구축과 관련기술 개발에 대부분 소요된 투자자본의 규모만 해도 45조원이 된다. 여기에다 고속도로 위를 달릴 「내용」과 관련된 사업에 투자될 자본은 확실한 규모가 불분명한 상태이지만 그것을 훨씬 능가할 것이다. 분명 이는 국력이 온통 집중되는 사업임이 틀림없다. 21세기의 국가경쟁력의 성패가 여기에 걸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술발전이 사회와 우리의 삶의 방향을 좌지우지해왔는가 혹은 사회의 필요가 기술발전을 이끌어왔는가 하는 문제는 사회과학의 오랜 논쟁거리의 하나다. 그러나 다른 시대는 몰라도 오늘의 세계는 급속도로 전개되어가고 있는 기술의 발전이 모든 정책과 우선순위의 선택을 이끌어가는 「기술결정주의」의 지배하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기술로 무엇을 할 것이며, 어떤 사용이 인간과 사회에 유용할 것인지를 판단해야 할 인문·사회과학영역은 이같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정보화사회를 향한 변화의 고삐를 놓치고 있는 형국이다. 사회과학의 일부가 간신히 정보화사회의 빠르고 경제적인 실현을 위한 정책연구의 수준에서 관여하고 있을 뿐이다. 근년에 이루어진 정보화사회에 관련된 온갖 연구용역의 압도적 다수가 통신기술, 산업, 매스미디어 영역관련의 정책연구에 국한되어 있다. 마치 정보화사회는 이들 분야에만 상관있는 것으로 생각될 정도로 다른 영역에 관한 사회적 무관심은 그 정도가 심각하다.
정보화혁명이란 단순히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의 기술적 양적 변화만이 아니고 사회 전반에 걸친 대규모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어느 부문도 이 새로운 변화의 소용돌이로부터 비껴 있을 수는 없게 된다. 정치과정이 달라지고, 돈의 순환방식이 달라질 뿐더러, 지역사회의 개념과 성격이 달라진다. 「논리」에 바탕을 둔 인쇄매체식의 글쓰기와는 전혀 다른 사고체계를 요구하는 「컴퓨터식 글쓰기」로의 전환이 진행되고 있으며, 시간과 공간, 현실개념등 지난 수세기동안 세상을 인식해왔던 방법과 문화의 근본을 이루던 기본개념의 틀이 달라지고 있고, 새로운 인간관계, 공동체의 개념과 아울러 새로운 사회관계의 정립이 불가피해지고 있다. 또한 질적으로 다른 문화, 예술, 놀이가 생겨나고 있다. 이미 확연히 가시화한 것만 대충 들어도 이렇다.
물론 대단한 변화가 일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대체로 옛 습성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인간성향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렇게 되는 사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나라에서 정보화사회의 건설작업에 가속이 붙어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보면 별로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정보화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지체현상이 되는 것이며, 이미 21세기의 대열에서 낙오됨을 의미한다는데에 문제가 있다.
이같은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컴퓨터교육의 확대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다. 컴퓨터 역시 엄밀하게는 연장에 지나지 않는 것이어서 그것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사용의 철학이 서 있지 않으면 정보화사회의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없다.
따라서 정보고속도로의 설치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그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첨단기술을 어떻게 사용할 것이냐 하는 「사용의 전략」이다. 정보고속도로가 21세기의 필수불가결한 국가기반구조인 만큼 그 사용의 전략은 21세기의 국운을 좌우할 정도의 중요성을 가진 문제이다.
이것은 시장의 이니셔티브에만 맡겨두면 되는 것인가? 그러나 시장 역시 방향감각의 부재와 아이디어 빈곤에 시달리기는 마찬가지다. 선의의 기업들도 창조적 비전없이 외국의 사례나 눈치보며 비슷하게 시도해보는 것이 고작이다. 정부가 할 일은 바로 이 비전이 생길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주는 일이다.
이 여건조성에 지름길이나 편법은 없다. 단기적인 정책연구만으로는 거시적인 사용의 전략을 마련할 수 없으며 그렇게 임기응변식의 대처만을 해 나가기에는 당면한 문제의 규모가 너무 거대하다. 우선 인문, 사회, 예술의 모든 분야에 걸쳐서 정보화사회와 관련한 다양한 연구활동을 대폭 활성화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사회에 적절하고 다양한 사용의 방향과 가능성에 대한 비전이 생길 수 있을 것이며 그것을 토대로 정보화사회에 부응하는 각 분야의 발전전략과 아울러 정책의 도출도 가능할 것이다. 이것이 모든 첨단기술이 가지고 있는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순기능들을 확대하고 장기적으로 탄탄한 국제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정공법이라고 생각한다.<서울대교수·언론학>서울대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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