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장 불구 「수치-체감 괴리」갈수록 심각/업종·규모별 편차 광범위/정책대상 설정조차 어려워 지난 10일 재정경제원에선 산업동향점검회의가 열렸다. 한달간의 산업활동내용의 특징과 문제점을 검토하는 월례회의였지만 이 자리엔 소매유통(슈퍼마켓) 및 건설관련단체 관계자들도 참석했다. 『최근의 경기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재경원측 질문에 대해 이 업계관계자들은 『갈수록 장사하기 힘들다』라고 잘라 말했다.
경기가 과열로 치달아 고단위 경기진정책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시점에서 업계의 이같은 반론은 정부로선 꽤나 충격적인 것이었다. 아무리 「경기양극화」니 「구조조정」이니 해도 지표상으론 유통업은 대호황, 건설업은 불황탈출의 기미가 역력했기 때문이다. 1∼2월중 도·소매매출액은 8.7%, 내수용소비재출하는 14.0% 각각 증가, 지난해 신장률을 크게 웃돌았다. 국내건설수주는 같은 기간에 5.6%, 건축허가면적도 13.8%나 늘어 건설경기가 긴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현장의 얘기는 달랐다. 이날 회의에서 슈퍼마켓업계 관계자는 『편의점 할인판매점의 대거 등장으로 「구멍가게」로 통칭되는 소규모소매상과 일부 슈퍼마켓들은 문닫는 곳이 속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도 『건설시장규모는 제자리걸음인데 최근 5년간 건설업체수는 5배쯤 늘었다. 이익업체는 몇 안될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회의를 지켜본 재경원관계자는 『지표경기와 체감경기의 극심한 격차를 실감했다』고 말했다.
「수치(지표)경기」와 「체감(생활)경기」의 이같은 괴리를 두고 일부에선 「국지호황론」이란 색다른 경기진단을 내리고 있다. 중공업―경공업, 대기업―중소기업의 이분법적 경기양극화가 아니라 중공업 경공업 대기업 중소기업내에 각각 업종별, 규모별로 대호황에서 초불황까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넓은 「경기스펙트럼」이 존재한다는 논지다. 물론 경공업보다는 중공업, 중소기업보다는 대기업이 「호황수혜그룹」임엔 틀림없지만 최근 쓰러졌거나 도산위기에 몰렸던 기업들(덕산그룹 삼도물산 유원건설등)의 면면만봐도 호황의 명암은 이제 개별 업종별로, 개별 기업별로 나타나고 있음을 알수 있다.
이같은 「국지호황」은 정부의 정책선택폭을 매우 비좁게 만들고 있다. 정부정책, 특히 거시정책수단은 기본적으로 「무차별성」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지표상의 초과수요나 공급애로만 보고 긴축책을 펼 경우 호황기업·업종의 투자열기는 진정될지 모르지만 불황업종·기업엔 치명타를 가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수출확대를 위해 엔고를 그대로 수용하자니 대일수입업체들이 아우성이다.
중소기업용 공단을 조성하고 자금·세제지원을 확대해도 그 수혜자들은 굳이 지원책이 없어도 견딜 수 있는 업체들이다. 또 연쇄부도로 영세기업의 퇴출이 잇따르고 있지만 신설기업이 그만큼 늘고 있어 호황기부도는 적정수준의 실업률유지와 기업신진대사를 촉진시키는 면도 있다. 호황의 국지화로 경기에 대한 업종·기업별 체감편차가 워낙 크다보니 「누구를 위한 정책」, 즉 산업정책의 대상설정이 어려운 상황이다.
재경원의 한 당국자는 『현재의 호황구조가 건전하다고는 볼 수 없지만 어차피 모두를 만족시키는 정책은 없다. 그래서 만족을 극대화하고 불만을 최소화하는 미조정이 필요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젠 뒤처지는 업종이나 기업을 위해 구휼정책을 쓸 때는 아니다』고 말했다. 정부엔 현재 「산업간 균형발전」과 「유망업종지원」이란 양립하기 힘든 과제가 부여됐지만 구조조정기에 처한 기업들도 『더이상 정부에만 의존하지 말라』는 주문을 받고 있다.<이성철 기자>이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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