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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정신은 경제대국의 뿌리(일본리포트: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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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정신은 경제대국의 뿌리(일본리포트:14­2)

입력
1995.04.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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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장이서 도공까지… 「천하제일」에 목숨걸어/요즘도 각분야 명인경연… 국가경쟁력 지렛대로 지난 1월 간사이(관서)대지진 당시 일본국내는 물론 세계의 언론들은 「일본의 상인혼은 살아 있다」고 대서특필했다. 전쟁터를 방불케하는 폐허속에서도 고베(신호)의 상점들은 지진이전과 조금도 다름없는 가격으로 물건을 팔았고 세일을 하고 있던 상점은 치솟는 수요를 대하고도 세일기간을 지켰다. 혼이나 정신을 얘기할 수 있는 것은 비단 상인들만이 아니다. 일본의 TV프로에는 매일같이 메이진(명인)들이 등장한다. 바둑에만 메이진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각종 요리메이진으로부터 젓가락메이진 줄넘기메이진 전자오락메이진등이 잇달아 출연해 도전자들과 한판 기술을 겨룬다. 처음에는 그저 시청자를 끌기위한 가벼운 장난같은 느낌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심지어 「복숭아씨 멀리뱉기 메이진」조차도 진지한 표정으로 도전에 응하고 자신의 장기에 자부심을 느끼는 모습을 대하면서는 조금씩 생각이 달라진다.

 흔히 말하는 일본의 장인정신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느낌과 함께 문득 매일같이 각분야에서 진행되고 있는 「작지만 치열한 경쟁」에 두려운 생각까지 든다. 일본이 국제시장을 장악하다시피 하고 있는 주요전자제품을 동형의 한국산과 비교할 때 가장 두드러진 차이도 전자적인 기능이 아니라  기계적·물리적 기능이라고 한다. 버튼과 스위치등의 디자인및 촉감, 모터를 사용한 회전부의 소음의 차이등은 일본제를 일급품으로 만드는 숨은 힘이다.

○최고 기술의 자부심

 금형과 가공 절삭 연마등의 고전적인 기술의 차이는 오랜 세월 축적된 일종의 「국부」여서 현대첨단기술보다도 한층 따라잡기가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일본이 세계에 자랑하는 첨단기술은 바로 이런 고전적 기술에 의해 단단히 뒷받침돼 있다. 오랜 세월 이어져 내려온 이같은 기술은 뼈를 깎는 각고로 이룩한 자신의 기술에 자부심을 느끼면서 하루라도 숙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던 일본장인들의 치열한 장인정신의 소산일 것이다.

 물론 이같은 장인정신은 개개인의 자발적인 각고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분명한 한계속에서 「천하제일」과 「자기분수」를 강요받았던 일본역사의 산물이다. 일본의 사학자들은 일본사회의 신분동요가 임진왜란 직후 도쿠가와바쿠후(덕천막부)가 중앙집권적인 지배권을 확보하면서 자취를 감췄다는데 견해가 일치하고 있다. 전란의 시대가 끝나고 평화와 새로운 질서의 도래와 함께 엄격한 신분질서가 당시의 일본민중들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농민의 무장해제와 전업금지등이 법제화하고 주어진 신분에 만족하지 못하는 자는 가차없이 처단됐다. 크게 무사 농민 기술자 상인의 4단계로 종배열된 폐쇄사회에서 특히 박해를 심하게 받았던 기술자와 상인들을 위로한 것이 천하제일이란 칭호였다.

○억압속에 피어난 꽃

 대장장이건 도공이건 인형제작자건 탈춤꾼이건 초밥집주인이건 일단 그 분야에서 천하제일의 칭호를 받으면 먹고 살 걱정이 없었고 무사들의 칼장난에 목숨을 잃을 일도 없었다. 동료들사이에서 부러움을 살만한 이 천하제일의 칭호를 받은 자는 남주기가 아까워 대대로 기술을 물렸다. 다른 집안에 이를 빼앗길까 전전긍긍하면서 잠시도 틈을 보일 수가 없었고 일단 빼앗기면 다시 목숨을 걸고 되찾기 위해 애썼다.

 이런 치열한 경쟁속에서 도자기건 꽃꽂이건 다도건 각 유파가 생겨나 전승되면서 일본은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기술잠재력을 키워온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일본의 장인정신은 「억압속에서 피어난 꽃」인 셈이다. 이같은 전통은 아직도 일본인들의 의식속에 잠재해 자본주의 시장경제하에서 보다 많은 이익추구라는 미세한 동기변화만을 겪은채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큰 규제와 작은 장려

 한편으로 현재도 일본정부는 매년 1백명씩 「현대의 명공」을 선발하고 있다. 목수 철로수리공 무대의상제작자 요리사 도검류제작자 도검류연마사등 대상분야는 실로 제한이 없다. 특히 전통공예부문은 각부문별로 인간국보가 지정돼 있고 각분야의 제작자들이 모두 문화청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행세가 가능하다. 「큰 규제」와 「작은 장려」로 짜여진 그물망이 현대기술경쟁에 그대로 이어져 국가경쟁력을 떠받치는 절묘한 상황은 「일본적」이라고 하기에 충분하다.<도쿄=황영식 특파원>

◎3대째 생선초밥집 이즈미 일가/할아버지때 손맛 그대로 전수/“철저한 천직정신이 성업비결”

 도쿄(동경) 미나토(항)구 아자부(마포) 주일한국대사관 인근의 생선초밥집 「이즈미(천)」는 사시사철 밀려드는 손님들로 붐빈다.

 올해로 개점 46년째를 맞아 한창 무르익은 「손맛」을 자랑하는 이집에는 종업원이 따로 없다. 주인인 이즈미 다케시(화천무사·71)씨가 주방장, 아들 가즈오(일부·46) 히데오(수부·45)씨 형제가 주방장 보조로 일하고 있고 안주인인 도시에(74)씨가 손님시중을 든다.

 이 집의 생선초밥이 70년대초 비행기로 공수돼 박정희 전대통령의 점심상에 올랐다는 얘기가 있고 지방에 부임한 사람이 일부러 상경해 들릴 정도로 유명한 이즈미의 「맛」은 가즈오씨의 할아버지로부터 이어져 온 것이다. 아버지 아래서 28년동안 일해온 가즈오씨는 평생 자기가게를 가져보지 못한 채 남의 집에서 일했던 할아버지의 솜씨를 고스란히 물려 받았다.

 아버지가 13세때 학업을 중단하고 할아버지가 일하던 가게에 들어가 생선초밥 만드는 솜씨를 배웠듯 가즈오씨도 고등학교졸업 후 곧바로 아버지 밑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도와 일을 해왔기 때문에 한번도 다른 직업을 생각해 본적이 없다』면서 『평생을 생선초밥만 생각하고 살아오신 아버지를 존경한다』고 말했다.

 한때 아버지 이즈미씨가 오사카(대판)에 따로 가게를 차려 주겠다고 권했으나 『아버지가 일생을 바쳐 지켜온 가게를 떠날 수가 없어 거절했다』는 그는 『이즈미를 지키는 것이 나의 천직』이라고 강조했다. 「처음 찾는 손님은 귀중하게, 두번째부터는 친구처럼」을 영업정신으로 내걸고 3대째 생선초밥만을 생각하며 살아온 이즈미일가는 철저한 직업정신으로 맛을 빚어내고 있다.<도쿄=손덕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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