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정숭호경제 2부장 우리정부는 지난 10일 긴급통상장관회의를 열어 미국의 자몽등 식품류에 대한 검역조건을 완화하는등 시장개방확대 조치를 취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4일 미국이 우리나라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면서 다시 시작된 미국의 통상압력에 너무 쉽게 백기를 든 셈이다. 그러나 방한중인 미하원 무역분과소위원회 토비 로스위원장은 『한국의 시장개방노력은 인정하지만 진정한 세계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로스위원장의 이같은 발언은 한국에는 아직도 많은 무역장벽이 남아있으며 미국은 필요에 따라 지금보다 더 강경한 시장개방압력을 행사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9선경력의 로스위원장은 통상문제에서는 물론 이민문제와 복지문제등 국내현안에서도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미의회 보수주의 지도자중의 한 명이다. 로스위원장과의 일문일답을 소개한다.
◎“한미 쌍무협상 통해 무역분쟁 해결기대”/한국개방노력 인정하나 장벽남아/OECD 가입땐 경쟁력 제고 도움
―한미통상현안에 대해 양국의 견해차가 너무 큽니다. 많은 한국인들은 우리가 그동안 추진해온 시장개방 노력이 무시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통관 절차 까다로워
『아직도 한국시장은 너무 폐쇄적입니다. 자몽 하나 수출하는데도 각종 검역절차로 통관이 지연되고 있습니다. 미국은 농약을 함부로 안씁니다. 미국사람들은 미국과일을 매일 먹고 있습니다. 위생상의 문제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도 한국은 너무나 까다롭습니다. 공정한 무역관행확립이 필요합니다』
―미국이 자몽의 통관지연을 이유로 세계무역기구(WTO)에 한국을 제소한데 대해 대다수 한국인들은 미국이 지나친 압력을 행사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미국정부의 대한협상태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합니까.
『미국은 쌍무협상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 했으나 한국이 커다란 입장차를 보이는 바람에 WTO에 제소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한국이 적극적인 개방의지를 보인다면 WTO제소는 즉각 취하할 수 있습니다. 미국은 지금도 쌍무협상을 통해 한미간 무역분쟁이 해결되기를 바랍니다』
―한국정부는 지난 10일 통관·검역기준을 국제수준으로 대폭 개선하고 자몽등 일부 농축산물의 통관절차 단축, 진공포장 냉장육류 유통등 미국측의 요구를 적극 수용키로 방침을 정한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같은 한국정부의 방침을 근거로 WTO제소를 즉각 철회할 수도 있습니까.
『보도를 통해 이미 알고 있습니다. 한국정부의 이같은 방침은 상당히 고무적입니다. 그러나 「말하는데는 돈이 들지 않는다」는 우스개소리가 있듯이 한국정부는 아직 말만 했을뿐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았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고 즉각 시행에 들어간다면 WTO제소 취하는 언제라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미국은 WTO의 첫 제소대상으로 한국을 선택했습니다. 우리는 한미통상마찰이 미―일(미일), 미―중(미중)간 마찰보다는 덜 심각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보다 앞서 한국을 제소하게된 배경은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한국이 일본이나 중국보다 훨씬 가까운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중국이나 일본을 방문하면 「왜 한국은 그냥 놔두고 우리만 괴롭히느냐」는 아우성을 종종 듣게됩니다. 한미관계가 특별하니까 미국이 한국에 대해서는 특혜를 준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심지어는 독일에서도 「남한은 미국에 물건을 팔기만하고 사지는 않는데 왜 우리만 다그치냐」고 불평합니다. 미국이 가장 가까운 우방 한국을 가장 먼저 제소한 것은 일본이나 중국등 다른나라가 이런 불평을 할만한 명분을 남겨두지 않기 위해 택한 고육지책인 셈입니다』
―소시지등 육가공품에 대해 한국은 이미 유통기한을 90일로 연장시켰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미국은 1백80일로 늘려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유통시설이 미국처럼 완전하지 못한 한국으로선 90일이 최장기간입니다. 이같은 현실을 무시하고 무조건 유통기한 연장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가 아닙니까.
『전세계에서 유독 한국만 유통기간이 짧습니다. 선진국 협의체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을 눈앞에 둔 한국이 후진국인양 유통시설낙후를 이유로 내세워 개방을 기피하면 곤란합니다. 모든 시장여건을 개방체제에 맞게 전환해야 합니다. 까다로운 통관절차를 대폭 축소하고 그만큼 유통기간을 늘리는 것도 문제해결의 한방법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미국산 쌀만 강요안해
―한국은 우루과이라운드(UR)협정에 의해 올해부터 쌀을 수입해야 합니다. 미국은 한국정부에 반드시 미국산 쌀만을 수입토록 요구한 적이 있습니까.
『한국시장에서 미국상품이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여건을 갖춰달라고 한국측에 요구했습니다. 한국에 미국산 쌀만을 사달라고 강요한 적은 없습니다』
―최근 AT&T가 북한에 진출하는등 북미경협이 빠른속도로 진전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 핵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국을 제쳐놓고 미국기업이 북한진출을 서두르는데 대해서는 비판적인 견해도 많습니다.
『한국과 미국은 서로 협력해서 북한을 개방으로 이끌어야 합니다. 물론 북한의 한국형 경수로 채택도 절대적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이런 정치적 현안을 뒤로한채 일본은 일본대로, 미국은 미국대로 각기 북한진출을 서두른다면 바람직하다고 볼 수는 없겠지요. 미국으로 돌아가면 클린턴정부에 미국기업의 북한진출노력을 자제토록 요청하겠습니다』
○달러가치 하락 불가피
―달러가치가 속락하고 있습니다. 달러화의 지속적 하락은 세계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경제분석가들사이에는 미국이 자국의 무역적자해소를 위해 달러화하락을 방치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달러화하락의 이유와 이를 위해 귀하가 이끄는 하원무역분과소위원회는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미국의 국제무역수지 적자가 극심한 만큼 어느정도의 달러가치 하락은 불가피합니다. 달러화가 떨어지는 것은 일본의 막대한 무역수지흑자 때문입니다. 일본이 시장을 더 열어 흑자를 줄이지 않는 한 현재로서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고 실토하겠습니다』
―최근 발생한 멕시코 페소화폭락사태는 멕시코가 OECD에 너무 빨리 가입한데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우리나라도 최근 OECD가입을 신청했는데 많은 경제학자들은 한국도 멕시코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습니다.
『한국과 멕시코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멕시코 페소화하락은 OECD조기가입 때문이 아니라 과소비와 막대한 외채, 그리고 부패때문입니다. 한국인은 부지런하고 정직하며 저축을 많이 합니다. 차근차근 경쟁력을 키워왔습니다. 한국이 OECD에 가입해 금융시장을 개방하면 오히려 경쟁력을 키울 수 있을 것입니다』<정리=남대희 기자>정리=남대희>
◇로스위원장 약력
1938년 위스콘신주 스타스버그서 출생
1961년 위스콘신주 마케트대 졸업
1961년 부동산회사 경영
1969년 위스콘신주 하원의원 당선
1978년 미연방 하원의원 당선
1995년 미연방 하원 무역분과소위원장(현재 9선)
◇한미 통상마찰 최근 일지
▲2월28일 미무역대표부(USTR) 크리스티나 런드한국담당국장이 농림수산부를 방문, 수입육류 유통기한 대폭 연장및 검역기간 단축을 요구.
▲4월4일 미키 캔터USTR대표가 미상원 재무위 청문회에서 『미국의 무역업자들이 한국의 잔류농약 검사결과를 기다리느라 3주를 허비하는 동안 미국산 오렌지류가 항만에서 썩어간다』며 WTO 제소방침을 처음 언급.
▲4월4일 미키대표발언직후 미국은 WTO에 한국을 정식 제소하고 한국에 WTO분쟁해결절차에 따른 「신속협의」를 요청.
▲4월6일 외무부는 미국측에 WTO제소 철회를 요청하고 WTO밖에서 양자가 해결하자며 미국의 신속협의 요청을 일단 거부.
▲4월10일 긴급통상장관회의에서 통관 검역기준을 국제수준으로 개선키로 결정. 자몽등 농축수산물의 통관절차 간소화및 미국산 진공포장육의 유통기간 연장등 미국측 주장에 대한 수용여부를 검토키로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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