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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견제 보수파거두/사망한 중국 진운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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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견제 보수파거두/사망한 중국 진운 누구인가

입력
1995.04.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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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옹호 「새장 경제론」 주창/「반문혁」투쟁때 등권력장악 큰 기여 10일 사망한 천윈(진운)은 최고실권자 덩샤오핑(등소평)과 함께 중국의 정치를 막후에서 요리해 온 이른바 8 노의 한 사람이다. 1905년생으로 등보다 한살 아래인 그는 등에 이어 원로 중의 제2인자였으나 등과 달리 보수적 노선을 견지, 정치적 소용돌이가 일 때마다 「등의 대안」으로 항상 주목받아 왔다. 마오쩌둥(모택동)이 「당내 제일의 경제통」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그였지만 50년대부터 실용주의 노선을 지향, 모와는 다른 길을 걸었고 76년 모의 사후 문화혁명 세력을 축출하기 위해 등과 손을 잡았다.

 그러나 반문혁 세력이 승리를 거둔 이후 그는 과감한 개혁을 추구하는 등과는 달리 개혁과 개방은 사회주의의 기본틀을 깨뜨리지 않는 범위내에서 제한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며 개혁파와 대립되는 반문혁 보수세력을 이끌었다.

 「흑묘백묘론」이 등의 경제사상을 대변한다면 그의 경제 사상은 「조롱경제론」으로 압축된다. 경제라는 「새」는 자유롭게 날 수 있으나 사회주의라는 「새장」안에서만 가능하다는 것.

 경제특구를 한번도 찾지 않을 정도로 등의 급진적 개혁에 동조하지 않았던 그는 89년 천안문사태를 계기로 이론적 반격을 시도했다. 그러나 등이 92년 남순을 강행하고 그해 10월 14차  공산당대회에서 사회주의 시장경제 노선이 채택됨으로써 천윈은 결정적 패배를 당했다.

 천윈이 등보다 앞서 감으로써 등이 먼저 죽었을 경우보다 보혁세력의 역전 가능성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또한 진의 사망으로 8노 중 이제 덩샤오핑, 펑전, 푸이포(박일파), 양상쿤(양상곤), 쑹런충(송임궁) 등 5노가 남게 됐는데 전체적 색채는 개혁쪽에 가깝다. 따라서 진의 사망은 등이 구축한 후계체제를 굳히는 데 이바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저우언라이(주은래)의 죽음이 마오쩌둥의 죽음을 앞당겼던 것처럼 죽음을 앞에 놓고 진과 경쟁을 벌였던 등이 이제 얼마나 더 버틸지가 남은 관심사이다. 등과 진은 모두 지난해 춘지에(춘절·중국의 설날)를 끝으로 대중으로부터 모습을 감추었다.

 천윈은 장수성 출신으로 25년 상하이(상해)에서 공산당에 입당했으며 공산정권 수립 후 상업부장 등 주로 경제분야에서 활약했다. 그는 56년에 이미 권력 서열 5위에 오를 정도로 덩샤오핑에 앞서 나갔다. 76년 모 사망 후 왕전과 더불어 등의 권력 장악에 결정적으로 기여했으며 79∼80년 부총리를 역임하고 92년 당고문위가 폐지될 때까지 당 고문위 주임직을 지켰다.<베이징=유동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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