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희작 「…암스텔담에 가자」 암스테르담의 한 호텔방 잠옷차림의 네 남녀는 이 방에 묵은 거성그룹의 총수 박장수가 샤워중인 틈에 그에 대해 티격태격하고 있다. 째보는 박장수가 첫 부인 안현숙과 신혼여행을 왔던 신성한 이 곳에 다른 여자를 부른 걸 비난하고 뚱보는 스트레스는 풀어야 한다고 맞받아친다. 낭보는 박장수의 애인 정강수의 낭만적인 편지에 반해 있다. 정확한 균형감각을 가진 횡보는 이들의 말을 모두 정리하고 평가한다. 이들은 박장수의 도덕적, 희망적, 낭만적, 이성적 분신들이다.
세계 30대 재벌의 총수이며, 사활이 걸린 우주항공산업 구상에 여념이 없지만 박장수의 삶은 선택과 결단을 요구하는 순간의 연속이다. 분신들의 대립은 한 인물이 어떠한 것에 주저하고 혼돈스러워 하는지를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박장수는 소위 영웅처럼 보이는 인간도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전쟁과 같고 수천 수만의 분신들을 이끌고 가는 사단장』이라고 말하고 있다.
작가 이만희는 『모든 사람은 자신의 불행이 가장 크다고 느낀다. 남들이 행복하게 보는 사람일수록 더 그럴 것이다. 이 작품은 한 인간의 고통이 있는 내면, 다시말해 각자가 가진 「존재의 향내」를 그린 것』이라고 말한다.
치열한 실존적 갈등을 부각시키는 데 재벌총수라는 인물이 적합한 것이었는가에는 의문이 남지만 이만희 특유의 툭툭 뱉어내는 식의 대사를 훌륭히 소화해 낸 연기를 보는 즐거움이 크다. 박장수역을 맡은 고인배의 중후함과 이찬우 최승일 허윤정의 자연스러움, 신인 최 슬의 독특한 이미지가 한데 어우러져 특별한 사건이 없는 작품을 촘촘하게 엮어낸다. 고인배 이만희등이 함께하는 기획사 「만」의 첫 공연으로 작가 출연진의 공동연출작이다.<김희원 기자>김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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