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삶을 보다 안전하고 용이하게 영위하려는 필요에서 사회라는 공동체를 형성하게 되었고 그 안에서 살아간다. 그래서 인간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명제처럼 사회적 동물로서 삶을 영위하게 된다. 그런데 다수의 사회생활이 원활하게 영위되기 위해서는 개인들에게 여러 제약을 가하지 않으면 안된다. 개인들이 제멋대로 행동하면서 사회가 파괴되는 것을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는 개인이 따라야 할 여러 전통, 관습, 도덕, 규범, 법등을 만들었다. 더구나 오늘날 사회생활은 심한 경쟁으로, 과중한 의무로, 여러 가지 상이한 역할수행요구로 개인들을 옥죈다. 사회생활은 한편으로는 인간의 삶을 용이하고 안전하게 하는 측면이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의 자유로운 삶을 제약하는 측면이 강하다. 그래서 프로이트는 인간이 문명을 유지하려 하는한 개인의 억압은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보았다.
사람들이 그러한 제약을 어려서부터 익히기 때문에 그것이 제2의 천성같이 되어 제약을 당연한 것으로 여길 수도 있다. 또 제약을 수용하지 않을 때 따르는 제재를 두려워하여 제약을 잘 따른다. 그렇지만 사회적 제약은 인간의 자기중심성이나 하고 싶은대로 하고자 하는 욕구와 충돌을 일으키게 된다.
따라서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면서도 사회를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를 갖는 역설적인 존재가 된다. 그런 시도가 오락이나 취미에로의 몰입으로, 섹스나 마약에의 탐닉으로, 또는 종교에의 도피로,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자살로 나타난다. 특히 장래에 대해 불안을 느끼거나 삶의 보람을 느끼지 못하면 그런 탈출의 충동은 더 커질 것이다. 그러고 이런 경우의 탈출시도는 대개 종교, 그것도 즉각적인 보상을 약속하는 사이비종교에의 도피로 나타난다.
결국 오늘날 횡행하는 마약이나 사이비종교 문제는 실은 사회문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은 사회의 억압성을 반증하는 것이다. 인간은 사회의 수혜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인간은 한편으로는 사회인이면서 한편으로는 사회로부터 탈출을 꿈꾸고 저항하고자 하는 욕구를 갖고 있다. 따라서 그런 탈출의 시도가 비록 사회에서 급하거나 어리석게 보이는 방식을 사용했다 하더라도 사회는 그들을 애정과 관용으로 대해야 한다.<이효성 성균관대·언론학>이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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