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장소 구애없이 여행중에도 교육가능/“따로 직장있는 학생들 주경야독에 효율적” 실제 강의실이 아닌 컴퓨터가 만들어내는 가상공간(사이버 스페이스)에서 이뤄지는 원격강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최근 국내대학가운데서도 컴퓨터를 이용한 원격강의를 실험적으로 채택한 곳이 등장, 원격강의가 일반화될 날이 머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미 5년전부터 컴퓨터 온라인시스템을 이용, 강의를 시작한 미국 뉴욕주 머시 칼리지는 이분야에서 가장 앞서나가고 있는 학교가운데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온라인정보회사 프로디지사에서 컴퓨터기술자로 일하는 프랭크 베네디티스(45)씨에게 집은 휴식처이자 동시에 강의실이다.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하고 잠시 휴식을 취한뒤 자기방으로 들어와 컴퓨터를 켜면 그때부터 베네디티스씨는 머시 칼리지 컴퓨터공학과 4학년생이 된다. 머시 칼리지의 온라인 네트워크 「머린(MerLIN)」에 접속, 전공과목인 「경영시스템」 「사무기기론」 강의실을 찾아 들어가면 담당교수가 남겨놓은 강의내용과 과제물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지난번 온라인을 통해 제출한 과제물에 대한 교수의 평가에다 같은 반 동료들이 남긴 메시지까지 들어있어 검색해야 할 분량이 산더미 같지만 지각공부에 맛을 붙여 피곤한 줄을 모른다.
베네디티스씨는 그동안 직장생활 틈틈이 가까운 대학에 등록, 강의를 들었지만 번번이 중도하차했다. 정규직장을 갖고 있으면서 일반학생들처럼 강의를 듣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머시 칼리지도 한동안 휴학해야 했으나 원격강의제도가 생긴뒤부터는 사정이 달라졌다. 2년전 복학한 이래 그가 온라인으로 딴 학점은 20학점에 달한다.
베네디티스씨가 한학기만 마치면 학사모를 쓸수 있도록 해준 사람은 이 학교 철학과 프랭크 맥클러스키교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직장때문에 야간수업을 들으면서 피곤해 하는 학생들을 볼 때마다 시간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가장 편안한 상태에서 수업을 들을 수 있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는 그는 5년전 자신의 강의에 온라인방식을 도입했다. 현재는 이 대학 원격강의부문 책임자로서 이를 확대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이번 학기 원격강의과목을 신청한 학생은 3백명에 이른다. 전체학생 6천7백명에 비하면 적은 수이지만 첫해 12명에 비하면 크게 늘어난 것이다. 원격강의를 실시하는 교수도 38명에 이른다. 이번 학기에 개설된 과목수는 14과목. 교양과목이 주를 이루지만 경영학 컴퓨터등 전공과목으로도 확대되고 있다. 먼저 교양과목을 집중적으로 확대, 많은 학생들이 원격강의의 이점과 혜택을 알도록 한다는 것이 이 학교의 방침이다. 내년에는 원격강의과목이 16과목으로 늘어나고 수강생도 5백명선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아직까지 원격강의만으로 학위를 딸 수는 없다. 그러나 학사담당 부학장 캐롤 무어씨는 『시스템이 매년 개선되고 학생들의 호응이 높아져 과목도 늘어나면 가까운 시일내에 원격강의만으로 학위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현재까지는 학부학생에게만 실시되고 있지만 따로 직업을 갖고 있으면서 먼 곳에서 통학하는 학생들이 많은 대학원과목에 원격강의가 더욱 효율적일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원격강의를 듣는 학생중에는 캐나다의 몬트리올이나 서부 캘리포니아에서 강의를 듣는 학생도 있다』는 맥클러스키교수의 설명처럼 이 같은 방식의 장점은 무엇보다도 공간적 조건에 구애받지 않고 교육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학생뿐 아니라 교수역시 연구실과 집뿐 아니라 여행중에도 랩탑컴퓨터를 통해 강의가 가능한 것이다. 이 학교 재학중 원격강의를 수강했고 졸업후에 곧바로 이 학교 전산실 운영요원으로 특채된 최상준(최상준·24)씨도 『언제든지 반복학습과 교수와 1대1의 학습이 가능하기 때문에 영어에 자신이 없는 소수인종이나 수줍음을 잘타는 여학생들에게 특히 유익한 강의방법』이라고 말했다.
「머린」내에는 학생들끼리 자유로운 토론을 할 수 있는「스튜던트 라운지」같은 대화방이 마련돼 있다. 또 강의과정에서 특정한 시간에 온라인에 동시접속, 수강생과 교수간에 직접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자칫 부족해지기 쉬운 학생과 교수간의 대화및 인간적 교류를 보충하기 위해서다.
맥클러스키교수는 『직접적이고 기술적인 지도가 필요한 과목은 원격강의가 효율이 떨어지지만 학생들간의 대화가 필요하고 공동토론을 많이 거칠수록 좋은 과목들은 원격강의를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원격강의 시스템「머린」/매주 5회이상 접속 메시지 의무화/학업 게을리할 경우 교수들이 “경고”/시험만은 학교에 나와서 치러야
원격강의를 수강신청한 학생들은 학기 첫시간에 강의운영방식에 대한 설명을 듣고 커뮤니케이션 소프트웨어 「프로콤」과 설명서를 받아간다. 원격강의를 듣기 위한 개인용컴퓨터는 하드디스크용량이 7백킬로바이트면 충분하기 때문에 286컴퓨터로도 수강이 가능하고 소프트웨어 설치 또한 간단하다.
머린(MerLIN)접속에 장애가 있거나 모르는게 있을 때는 전산실에 문의사항을 전자우편으로 남겨놓거나 직접 전화를 하면 학교 전산요원들이 처리해준다. 컴퓨터가 집에 없는 학생들은 학교 전산실의 컴퓨터를 통해 수업에 참가한다. 학습시간동안 줄곧 온라인에 연결돼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필요한 내용만을 전송(다운로드)받고, 과제물을 한번에 전송하면 되기 때문에 전화비부담은 많지 않다.
원격강의를 위해 학교에는 하드디스크용량이 1기가바이트에 램메모리용량이 16메가바이트인 486컴퓨터 2대가 24시간 작동되고 있다. 타임세어링프로그램을 설치, 하나의 CPU(중앙연산장치)로 동시에 여러가지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에 메시지수신 도중에도 전송기능등 여타기능을 할 수가 있다.
아직까지는 동시에 12명이 접속가능한 수준이지만 수강과목과 학생이 늘면 점차 확장해 나갈 방침이다. 학생과 교수는 각각 암호를 부여받는데 직위에 따라 보안등급이 각기 다르게 매겨진다. 때문에 교수는 모든 학생들의 전자우편메시지를 검토할 수 있지만 학생들은 교수앞으로 온 메시지나 교수간의 통신내용을 알수 없다.
학생들은 매주 5회이상 머린에 접속, 메시지를 남기도록 의무화돼 있고 교수 역시 매일 최소 1회씩 학생들의 메시지를 검토, 응답해주도록 돼 있다. 현재까지는 평균 하루 1백20명의 학생이 머린에 메시지를 남기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학생이 학업을 게을리할 경우 교수들이 경고메시지를 띄우고 직접 전화를 통해 경고하는 경우도 있다. 모든 수업과정이 온라인을 통해 이뤄지지만 시험만은 학교에 나와서 치러야 한다.
◎인터뷰/머시 칼리지 제이 섹스터 총장/“인터넷통해 전세계로 강의 확대계획 한국학생도 자국서 수강 가능해질것”
머시 칼리지가 지금까지 원격강의시스템을 위해 투자한 비용은 1백만달러가 넘는다. 이 가운데는 IBM 나이넥스 AT&T등 대기업들의 후원도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교육체계에 대한 대학의 투자는 총장의 전폭적인 지원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제이 섹스터 총장은 원격강의라는 개념이 생소하던 때부터 이러한 「모험적인」 투자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서왔다.
『교육에 있어 가장 중요한 투자는 사람』이라는 그의 말처럼 그는 교수들이 원격강의시스템을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부을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 시스템을 처음 도입한 맥클러스키교수가 「원격강의부문 책임자」라는 공식직함을 갖고 이 일에 몰두하고 있는 것도 섹스터총장의 이러한 이해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머시 칼리지는 현재 영국에서 주로 이용되고 있는 비디오원격강의에 대한 연구도 병행해 진행중이다. 앞으로는 컴퓨터온라인 뿐 아니라 다양한 매체를 통해 효율적인 강의를 진행해 나가겠다는 것이 섹스터총장의 구상이다.
섹스터총장은 한걸음 더 나아가 이 대학이 제공하고 있는 원격강의를 인터넷을 통해 전세계로 확대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인터넷을 통해 「머린」에 접속하는 것이 가능해지면 한국학생들도 자국에 앉아 우리 대학의 강의를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원격강의의 전망을 묻는 질문에 그는 『우리가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은 교육의 질』이라는 말로 대답을 대신한다. 『원격강의의 질이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높아질 때 더 많은 학생들이 몰려들고 원격강의도 확대될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돕스페리(뉴용주)=김준형 특파원>돕스페리(뉴용주)=김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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