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 한 마리 사러 왔습니다』『우리는 토끼를 팔지 않습니다』『저기 있는 건 토끼 아닌가요』『아 저 토끼요, 입양해 갈 수는 있습니다』 캐나다 토론토대학에 연수와 있는 대학선배가 애완동물 가게에서 겪은 일이다. 아내가 교편을 잡고 있는데다 이런저런 이유가 겹쳐 가족을 데려오지 못한 그는 겨울 방학을 이용해 아내와 7살난 딸을 토론토로 불러 들였다. 이 딸이 유난히 동물을 좋아한 게 「사단」이었다.
『입양』운운에 잠시 말문이 막혔던 그는 곧 상황을 알아차리고 정중하게 입양의사를 타진했다. 팔지도 않는 토끼를 사겠다고 우겨봤자 될 일이 아니었다. 가게 주인도 감히 애완동물을 사겠다고 덤벼드는 그의 무지함을 그 정도로 적당히 눈감아 주는 눈치였다.
정작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출생증명서 따위를 늘어놓고 입양서류 작성에 들어간 가게주인이 토끼를 기르게 될 딸이 한달 뒤에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알고는 난색을 표했다. 「고아」가 될 게 뻔한 곳에 입양을 시킬 수는 없다는 것이 첫째 이유였다. 딸이 한국으로 돌아가면 토론토에 사는 친지에게 재입양을 한다는 약속으로 이 난관도 그럭저럭 넘길 수 있었다.
그러나 주인의 그 다음 말이 『토끼 한마리 가지고 까다롭게도 군다』싶었던 그의 가슴과 얼굴에 모닥불을 확 끼얹었다. 토끼도 토끼지만 토끼와의 이별로 아이가 받게될 마음의 상처는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까지 「배려 당한」 그는 떠듬거리며 『아이를 잘 다독거려 어떻게든 상처받지 않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하고서야 토끼를 데려올 수 있었다.
토끼 한마리 사러 갔다가 인간적인 모멸에 훈계까지 줄줄이 얻어 들은 그는 며칠 뒤 모 기업의 토론토 지사에 근무하는 친구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친구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잘 키워. 그게 문화차이가 아닌가』<뉴욕=홍희곤 특파원>뉴욕=홍희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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