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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O시대의 협상력(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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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O시대의 협상력(사설)

입력
1995.04.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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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통상외교가 있는가 없는가. 세계의 경제선진국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의 가입을 정식 신청해 놓고 있지만 세계 제1의 경제대국이며 한국 제1의 통상 상대국인 미국과의 통상협상을 보면 정부의 통상협상력에 대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얼마전에는 한미통신협상에서 미국 AT & T사의 통신설비에 대한 인증검사절차를 국내관계법을 어겨가면서까지 일부 생략, 국내 관계기관의 입찰에 참여할 수 있게 해주더니 이번에는 미국무역대표부(USTR)가 자몽(감귤류)의 통관문제와 관련하여 한국의 농산물화학잔류성분검사기준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다. 미국의 WTO제소 제1호에 한국이 걸려든 것이다.

 정부는 이것이 불안했던지 미국측 요구대로 지난 4월1일자부터 WTO협정의 취지대로 「선통관·후검사」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고 주장, WTO가 아닌 쌍무협정으로 이 문제를 매듭짓자고 미국측에 제의했다. 외무부측 설명은 통관절차를 검토한 결과 적절치 못하다고 판단하여 이를 시정했으므로 WTO 신속해결 절차발동요건인 「급박한 상황」이 소멸됐다는 것이다.

 미국이 쉽사리 들어줄 것 같지 않다. 이번 사안도 얻어 맞고서야 부랴부랴 서둘러 시정하는 우리측 협상행태의 전형적인 악례의 하나라 하겠다.

 미국행정부의 통상협상 기본전략은 『미국이 개방한 만큼 개방하라』는 것이다. 시장경제원리와 상호주의가 바탕이다. 우리는 보호주의였던 시장을 개방하되 가능한 한 국내충격을 줄이기 위해 시간을 늦추고 폭을 제한하자는 것이 기본입장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미국과의 협상에서 자연 방어적이고 수세적이다.

 불리한 위치에서 협상하기 때문에 미국보다 정책이나 상황 논리에서 나름대로 타당성, 일관성, 합리성을 갖추어야 한다. GATT에 이어 WTO체제가 출범했으므로 통관, 유통, 개방업종등 관련체제와 제도를 WTO체제에 적응시키면서 시장개방의 폭과 속도를 조정해 가야 하는 것이다.

 정부는 WTO체제시대에 대비한 통상전략과 전술등 준비태세가 제대로 돼있지 않은 것같다. 한국은 통상외교에서 신뢰도가 높지 않다. 양보할 것과 지킬 것을 가려 협상해야 하는데 선별력과 신축성이 없다. 또한 일단 합의한 것은 지켜줘야 하는데 그렇지도 못하다는 것이다.

 미국은 한국에 대해 소시지, 서비스(케이블 TV·어학학원), 표준(검사·라벨링·인증), 지적소유권보호, 금융, 자동차등과 관련해 파상적인 시장개방내지 확대공세를 펼것으로 위협하고 있는데 정부의 대응능력이 뭣인지 불안하다.

 정부의 통상협상력이 재정경제원, 통상산업부, 외무부, 농림수산부등 관련 각 부처로 분산돼 있는 것도 문제다. 정부의 통상외교는 기구에서부터 전략·전술에 이르기까지 전면 재검토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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