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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턴의 북핵정책 오류/이재승(일요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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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턴의 북핵정책 오류/이재승(일요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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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04.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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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간의 관계에는 영원한 적도 없고 우방도 없으며 국가의 이익만이 있다. 요즈음 한창 어지럽게 돌아가고 있는 클린턴 미행정부의 대북한핵정책과 관련, 진부하게 들리는 이 진실에 새삼 공감이 간다. 영국의 석학 아널드 토인비의 지적대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민족과 문명은 역사의 무대에서 소멸된다. 이념·사회·나라등도 마찬가지다. 사실 만물이 그러하다. 이데올로기로서 공산주의와 그 체제의 붕괴는 20세기 최대의 국제정치적 변화, 이에 따라 전후 세계를 양분해 온 미·소의 냉전체제가 붕괴되고 세계질서가 「팍스 아메리카나」(미국지배에 의한 세계평화)체제로 재편성되어가고 있는 과도기다. 그러나 클린턴행정부의 리더십과 비전의 결여와 미국 국력의 상대적 한계로 「팍스 아메리카나」의 실체가 여전히 불투명하다.

 한·미를 「혈맹」으로 묶어놓은 냉전체제가 없어짐에 따라 한·미관계도 이제는 자국이익 중심으로 바뀌어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추세다. 그러나 여기에서 한·미 양국이 간과해서 안되는 것은 공조체제의 유지가 양국의 공통이익에 실보다는 득이 많다는 점이다.

 특히 남·북한분단과 대치등 한반도의 긴장해소와 평화정착문제에서는 필요불가결하다. 그런데 미·북한핵합의와 그 이후의 클린턴행정부의 대북한접근을 보면 오히려 북한측의 의도대로 한국을 따돌리면서 그들과 공조체제를 형성하려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이제 클린턴행정부의 속셈과 역량을 가늠해볼 수 있는 대시험의 기회가 오고 있다. 미국과 북한 사이에 오는 4월21일까지 체결키로 합의한 경수로공급협정이다.

 경수로건설에 소요되는 자금의 대부분(약40억달러)을 떠맡겠다고 흔쾌히 미국측 요구를 수락한 한국정부는 처음부터 한국형(울진3·4호기와 동형)이어야 한다는 것을 명백히 해왔다. 급기야는 김영삼대통령이 『북한이 한국형경수로 수용을 끝내 거부한다면 경수로공급사업 자체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쐐기를 박았다. 정부의 강경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다른 한편 북한은 처음부터 한국형을 거부해 왔으나 막상 지난 10월 미국과의 핵동결합의 때는 침묵으로 넘어갔다가 그후 기회있을때 한국형거부를 되풀이해왔다. 관건은 클린턴행정부의 입장이다. 로버트 갈루치 핵대사, 윈스턴 로드 국무부 아·태담당차관보등 미행정부 고위관계자들은 공적으로는 한국을 대변한다. 한국형이외에는 대안이 없으며 송·배전설비등의 부대비용제공은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행정부는 비공식적인 매스컴으로의 기사유출을 통해 한국형이라는 명칭에 구애될 것이 없지 않느냐며 명칭의 양보를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 미·북핵합의와 관련, 줄곧 북한측에 호의적인 입장을 취해온 뉴욕 타임스지나 셀리그 해리슨 카네기국제평화재단수석연구원 같은 일부는 한국측에 한국형포기를 요구하고 있다. 한국에 원자력발전기를 수출, 톡톡히 재미를 본 웨스팅 하우스사와 한국형경수로의 공동개발자인 컴버스천 엔지니어링사까지 미국과의 협상에 대비, 북한측에 자문했다니 미국기업의 장삿속에 기가 찬다.

 클린턴행정부는 남·북대화재개등 한국입장관철보다는 북의 핵동결등 자신의 당면이해관계에 훨씬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 더구나 대북관계에서 한국의 이익을 희생시켜가며 자기이익을 얻으려 한다. 레이건·부시행정부 때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클린턴행정부는 한반도에서 돌이킬 수 없는 역사의 오류를 범해서는 안된다. 통일의 시기를 놓쳐 버릴 수도 있다. 결자해지의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월 스트리트 저널지는 29일자 사설에서 워싱턴은 처음부터 평양이 세계를 총신위에 놓고 노는 것처럼 협상했다고 비판했다. 클린턴행정부는 오류를 피하려면 제임스 릴리 전주한미대사의 충고를 경청해야 할 것이다. 그는 뉴욕 타임스지 기고(26일)에서 북한이 한국을 희생으로 하여 판돈을 올리는 게임에 말려들지 말라고 했다. 그의 말대로 미국은 남·북한을 동등하게 대해서는 안된다. 한국과는 이익·가치관을 공유하고 있고 또한 안보조약을 맺고 있다. 미국은 북한의 전쟁위협에 끌려 다녀서는 곤란하다. 결함투성이의 미·북핵합의는 개정돼야 한다.

 클린턴행정부는 대북핵정책에서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봐야 할 것이다. 북과의 핵동결에만 연연할 것이 아니라 한반도를 놓고 정책을 펴야 한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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