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대통령 조화… 강영훈·조순전총리 조문/전현외무장관 애도행렬 「외무부장」 결정 ○…서울중앙병원 영안실에 마련된 고 김용식전외무장관의 빈소에는 1일 새벽부터 김영삼대통령과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전대통령이 각각 조화를 보내와 고인의 별세를 애도. 이날 빈소에는 또 고인의 오랜 외교 경륜을 반영하듯 이동원 박동진 최광수 최호중 이상옥 전외무부장관등 역대 외무장관과 공로명 외무장관이 속속 도착, 헌화한뒤 고인의 장남 형기(58)씨등 유족에게 애도를 표시.
이홍구총리 강영훈 대한적십자사총재 현승종 전총리 조순 전부총리등 전·현직각료와 함께 정주영 현대그룹명예회장 조중훈 한진그룹회장등 재계인사들도 빈소를 찾아와 조문.
○…유족들은 5일장 기간동안 조의금을 받지 않기로 하고 고인의 유지를 따라 검소하게 장례를 치르기로 결정. 한편 정부는 고인의 장례를 4일 상오 7시 영결식을 시작으로 외무부장으로 엄수키로 하고 장례위원장에 공로명 외무장관을 위촉.
이날 빈소에는 외무부직원 10여명이 나와 조문객 안내를 맡았다. 장지는 경남 통영시 도산면 법성리 선영. 빈소 연락처 476―3099,5099
◎한국외교 격변기 이끈 큰별/김용식 전외무장관을 기리며
고인이 되신 김용식 전외무장관은 해방이후 척박한 외교현실속에서도 혼신으로 우리 외교사를 빛내주신 큰 분이셨다.
지난 60년 외교현장에서 인연을 맺은 후 35년동안 고인은 나라일을 함께 걱정하던 동료이자 친구였으며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존경심을 다해 모셨던 스승이었다. 돌이켜보면 고인은 아마도 타고난 외교관, 그것도 어려운 시기의 한국에 가장 적합했던 「운명적 외교관」이었던 것 같다.
돌아가시기 3주전쯤 만나뵙던 고인은 퇴임이후에도 늘 그랬듯이 나라 걱정과 함께 지금 우리 외교를 이끌고 있는 후배들에 대해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다. 고인은 이제 영면하신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의 정정함과 열정을 갖고 북한핵문제에 대처하는 우리 외교의 공과를 논하셨다. 핵문제가 가파른 고비로 치달을수록 우리 외교는 「주체성」을 가져야 한다는 말씀이 유언처럼 돼버린 지금 고인을 잃은 안타까움은 더해만 간다.
어찌보면 고인은 국내외적으로 도전과 시련이 끊이지 않았던 제1, 3 공화국시절에 외교일선에서 분투하신 만큼 나름대로 울분과 좌절도 느끼셨을 게다. 한일 기본조약이 체결되기전 당시로선 적지인 일본에 공사로 부임, 양국간 국교정상화의 길을 닦으셨을 때나 5·16이후 한미관계가 극도로 긴장된 상황에서 대통령특사로 파견됐을 때 고인이 느낀 사명감은 훗날의 평가를 떠나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외무장관으로 또는 대통령비서실장으로 고인과 이 어려운 시절을 함께 했지만 고인이 보여줬던 경륜은 작금의 우리 외교에 더욱 절실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또 UN외교의 개척자이기도 한 고인이 주유엔대사시절 「나라는 비록 걸음마를 시작하고 있지만 외교관만큼은 거물급」이라는 평가를 받은 것은 두고 두고 우리 외교의 자랑거리가 되기에 충분했다.
고인은 「외교란 때로 두드려보고 재보는 신중함도 필요하지만 휘몰아치는 열정과 대담함도 필요하다」는 일생의 신조를 남기고 가셨다. 고희와 희수를 넘기고서도 이런 저런 나랏일로 또 집필활동으로 마지막까지 일손을 놓지 않으셨던 열정을 우리 후배들이 간직해주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고인은 우리 외교사에 필적하기 어려운 큰 족적을 남기셨지만 이제는 후배들이 그 족적을 이어나갈 차례가 됐다. 고인도 떠나시면서 염원하셨으리라. 편안한 길 되시기를…<이동인 전외무장관>이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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