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그룹 계열사 “정리” 공언불구 2년연속 증가/중기와해 등 폐해가속 우려… 정부정책 실효성 의문 재벌의 영토확장에 끝이 안보인다.
정부의 자신만만한 경제력집중억제와 업종전문화 드라이브에도 불구, 대기업의 「문어발 확장」은 좀처럼 멈출 기미가 없다. 『계열사를 정리하겠다』고 공언했던 재벌들의 「신뢰성」과 「도덕성」은 물론 정부가 펼치고 있는 대재벌정책의 「실효성」모두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한 올해 「30대 대규모기업집단」의 계열사수는 모두 6백23개(작년말 기준). 1개 재벌의 평균 계열사수는 20.8개이고 1∼5대재벌은 41.8개씩 거느리고 있는 셈이다. 계열사수는 92년 6백8개에서 93년엔 6백4개로 줄었고 지난해엔 6백16개로 늘어나더니 올해 다시 7개가 늘어났다. 감소하던 재벌계열사수가 문어발확장을 강도높게 비판하던 현정부 출범이후 오히려 2년연속 증가세로 접어들었다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물론 계열사수만으로 재벌을 책할 수는 없다. 대기업이라고 해서 새 업종에 진출해서는 안된다는 법은 없고 기업의 진입·퇴출을 인위적으로 막을 수도 없다. 유망분야라면 자본·기술·인력이 뒷받침되는 대기업이 선도하는 것도 괜찮은 일이다. 실제로 지난해 30대기업집단으로 새로 편입된 50개 계열사의 면면을 보면 ▲정보통신업 6개 ▲할부금융업 5개 ▲유통업 4개 ▲환경업 2개등 이른바 「첨단업종」도 꽤 많았다.
하지만 문제는 기업소유권이 특정인(오너)에게 집중되고 소유와 경영의 경계가 모호한 우리나라의 재벌구조다. 이들의 영토확장은 경쟁력없는 군소업체들을 몰아내 결국 독점적 시장지배를, 더욱이 지금처럼 소유집중이 극에 달한 상태에선 몇몇 개인에 의한 국민경제지배를 초래할 수도 있다. 『선진국치고 대기업이란 이유만으로 진입·퇴출을 규제하는 나라는 없다』는 재계의 항변이 『선진국에도 과연 우리나라 재벌같은 기업이 있는가』란 말로 일축될 수밖에 없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때문이다. 공정위의 한 관계자는 『규모의 경제로 보면 기업집단은 이점도 있다. 그러나 소유집중이 낳는 사회적 비형평성, 무분별한 확장이 가져오는 중소기업와해와 독점적 시장지배, 그리고 소중한 국가자원의 비효율적 배분부터 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재벌들은 현정부 출범직후 계열사 분리매각을 앞다퉈 선언했지만 그 순간에도 계속 새 회사를 세우고 다른 기업주식을 사들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지분청산 상호채무보증해소등 복잡한 절차를 거쳐 4∼5년후면 약속했던 계열사를 떼어내겠지만 말의 신뢰성과 도덕성엔 치명적 상처를 입은 셈이다.
재벌의 확장을 호경기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자산총액(2백33조원)은 1년전보다 17%, 매출액(2백49조원)도 17.4%나 늘어 국민경제 전체의 성장속도(명목GDP기준 14.2%)를 크게 앞질렀다. 아무리 자본과 기술이 부를 지배한다고는 하나 무수한 중소기업이 호황의 그늘에서 허덕이는데도 유독 재벌만 국가경제의 성장을 독식하는 것은 건강한 경제구조는 아니다.
기업과 정부 모두 발상의 전환이 없는한 재벌의 폐해는 예상보다 훨씬 더 커질 수 있다는게 일반적인 지적이다. 경제의 규모가 커지고 높은 실적을 이루는 것과 건강하게 성장하는 것과는 별개 문제이기 때문이다.<이성철 기자>이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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