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성 인정속 야대응에 신경/민자/“소신행정 막는 독소조항”반발/민주 여야는 30일 중앙정부에 지방자치단체의 파산선고권한을 부여하려는 내무부의 방침에 대해 모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기초자치단체장의 정당공천배제 문제로 벌써 한차례 홍역을 치른 정치권으로서는 이 문제가 다시 정국의걸림돌이 되지않을까 우려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특히 민주당은 내무부방침을 정치적 의미로 확대해석하면서 벌써부터 경계눈초리를 곤두세우고있다.
○…민자당은 내무부방침의 정책적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선거를 불과 3개월정도 앞둔 시점에서 지자제법개정문제가 정치쟁점화하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민자당의원들은 그동안 지방자치단체가 재정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빠졌을 경우에 대비한 법적, 제도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었다. 김영삼대통령도 유럽순방직후 가진 민자당의원들과의 간담회에서 민선단체장의 인기위주 행정으로 인해 지자체에 재정적 어려움이 초래되는 상황을 우려했었다. 따라서 내무부가 이같은 방향으로 지자제법개정을 본격 추진할 경우 민자당도 원칙적으로는 이에 동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민자당 일각에서는『중앙정부의 지자체개입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법개정을 시도하는 것은 선거전략에 도움이 되지않는다』는 반론도 내놓고 있다. 야당이 『지방자치를 하기 싫어하는 정부여당의 속셈이 다시한번 확인됐다』고 치고나올게 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편 민자당은 이날 상오 내무부와 당정회의를 가졌으나 이 부분에 대한 보고는 일절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정책관계자는 『행정부서차원에서는 여러 경우를 상정해 대비수단을 마련하려하겠지만 당으로서는 정치적인 고려도 하지 않을 수 없다』며 곤혹스러워 했다.
○…민주당은 지방자치관련법 개정안내용중 중앙정부에 파산선고권한을 부여한 대목을 지방행정을 정권에 예속시키려는 음모가 숨어있는 독소조항이라고 규정, 즉각 반발했다. 이는 각급 자치단체의 낮은 재정자립도를 감안할때 중앙정부가 이를 빌미로 언제든지 마음에 들지않는 단체장을 「매장」시키기 위한 장치라는게 민주당의 시각이다.
국회내무위 간사인 정균환의원은 『서울등 일부 대도시를 제외한 대부분 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가 매우 낮은 현실을 악용, 민선단체장을 견제하겠다는 의도』라며 철회를 요구했다. 이 개정안이 시행되면 재정자립도가 각각 23%, 27%에 불과한 전남과 전북의 지사와 20%를 밑도는 호남의 다수 기초단체장들의 경우 소신행정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진다는 주장이다.
정부의 「다른 의도」에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 문희상 총재비서실장은 『혹시 여권이 정국의 경색을 일부러 유도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 개정안에 대한 야당의 반발을 예상못할리 없는 정부여당이 이 문제를 고리로 정국을 다시 혼미상태에 빠뜨려 궁극적으로 선거 자체를 연기하거나 적어도 민주당이 제기한 「중간평가론」등 선거의 초점을 흐리려는 전략이 깔려 있을지 모른다는 주장이다.<신효섭·유성식 기자>신효섭·유성식>
◎외국의 예/미·불등 3∼4국서 시행/미,재정전문가파견 단체장직 대행/불,중앙정부서 해당시장 정직처분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파산선고제도를 운영하는 곳은 미국등 3∼4개국 정도이며 지자제의 뿌리가 깊은 일본도 이 제도를 채택하고 있지 않다. 내무부의 구상도 미국의 제도를 염두에 둔것이다.
미국은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상태가 일정수준 이하로 악화되면 연방정부나 주정부가 심사후 파산선고한다. 최근의 사례로는 90년 매사추세츠주 보스턴근교의 소도시 첼시시가 무리하게 재정투자를 확대하다 연방정부의 파산선고를 받았고 지난해 12월5일에는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근처의 오렌지 카운티에도 파산선고가 내려졌으며 최근에는 워싱턴DC가 파산위기에 몰려 있다.
오렌지 카운티는 방만한 재정운영에다 경기예측의 실패로 금융투자에서 막대한 손실을 입었으며 워싱턴DC는 도시의 공동화 현상으로 주민과 산업체가 지역을 떠나 재정상태가 악화됐기 때문이다. 파산선고를 받은 자치단체에는 연방정부나 주정부의 재정전문가가 파견돼 도시관리인(CITY MANAGER)으로서 단체장의 역할을 대행한다.
미국은 이같은 일반자치단체뿐 아니라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상·하수도등의 공기업분야에 대해서도 같은 형태의 파산선고를 내린다. 최근에는 파산건수가 줄어들고 있으나 미국 경기가 바닥세를 보였던 87년에는 18건이나 됐다.
프랑스는 이같은 형태와는 다소 다르나 시장이 재정운영을 포함, 직무를 적절히 수행하지 않았다고 판단될 경우 중앙정부가 해당 시장에 대해 정직처분을 내리고 있다.
◎“재정 방만운영방지”강조/「지자체 파산선고제」추진 배경/인기위주 즉흥사업 사전쐐기/“중앙통제강화” 의혹불식 과제
내무부가 30일 발표한 「한국형 지방자치모델정립및 추진방안」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재정이 부실한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파산선고제」 도입이다.
「파산선고제」는 한마디로 부실기업에 대한 법정관리제도와 유사한 개념이다. 지방자치단체가 방만한 운영등의 이유로 재정상태가 극히 악화돼 더이상 자치단체 자체의 능력으로 수습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될 때 국가가 대신 운영을 맡아 재정이 호전될때까지 「위탁관리」하는 제도이다.
내무부는 자치단체의 재정능력이야말로 지방자치제의 성패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보고 그동안 건전한 지방재정의 운용방안 마련을 위해 고심해 왔다. 내무부는 최근 발표한 「지방재정관리제도」에서 ▲지방사업에 대한 중앙정부의 정책지침및 「중기지방재정계획」 수립 ▲투자우선순위및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위한 「투·융자 심사제도」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재정진단제도」도입 ▲재정능력에 따른 국고보조금의 차등지급등의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내무부는 이와함께 자치단체에 대한 재정진단을 통해 재정운영이 모범적인 곳에 대해서는 매칭펀드(MATCHING FUND)제도를 도입해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도 마련해 자치단체의 자구노력을 자극, 지원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그러나 이러한 간접적 방법만으로 지방재정의 건전화를 유도하기에는 현재 지방재정상태가 워낙 열악하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게다가 지방자치제도의 첫 본격실시에 따른 부작용으로 주민들의 욕구분출과 단체장, 지방의원들의 과도한 개발의욕으로 재정수요가 급증할 것이 예상되고 있어 가뜩이나 열악한 지방재정상태를 한층 악화시킬 전망이다. 또 인기도를 의식, 재정여건을 감안치 않은 즉흥적인 대형사업들도 경쟁적으로 추진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파산선고제는 이런식의 방만한 운영으로 지방재정이 회복불능 상태에 빠졌을 때 쓸 수 있는 최후의 극약처방이라고 할만한 것이다. 단체장의 권한을 파산선고와 함께 정지시키고 대신 정부가 재정전문가를 파견해 단체장으로서의 임무를 대행하게 하는 것이다. 다시말해 자치단체가 자치기능을 잃고 재정 정상화때까지 사실상 중앙정부의 위탁경영 상태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내무부가 자칫 「지방통제를 강화하려는 전근대적인 발상」이라는 반발을 감수하면서도 이 제도의 도입을 추진하려는 것은 이러한 어려운 상황을 앞둔 「경고용」의 성격이 강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즉 이러한 강력한 제재수단을 마련함으로써 거꾸로 건전한 재정운영을 유도할수 있다는 판단이다. 또 최악의 경우에는 국가가 개입, 효과적으로 재정상태를 회복시킬수 있는 길을 트는 측면도 있다. 이와 관련, 김용태 내무부장관은 『파산선고제도가 자치단체에 대한 응징수단이 아니라 오히려 구제수단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파산선고제는 어떻든 중앙정부의 의도에 따라 「양날의 칼」 성격을 갖고 있어 여론수렴 과정등 실제 시행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이준희 기자>이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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