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말뒤집기 파문은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지방선거를 석달앞둔 시점에서 대통령이 지방순시를 통해 지역개발 공약을 하는 것이 사전선거운동이냐 아니냐는 미묘한 질문에 대한 선관위의 입장 번복은 외압이 있든 없든 그들의 자질을 의심케 한다. 19일 김석수선관위장은 기자간담회에서 『대통령의 지방초도순시는 선거기간이라 하더라도 중단할 수 없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며, 거듭 공명선거 의지를 밝혀온 대통령이 고유권한을 넘어 공명선거 분위기를 해치는 일을 하지는 않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배포된 서면답변자료에는 그같은 전제에 이어 『그러나 선거가 임박한 시기에 선심행정 의혹을 살 우려가 있고, 발표시기를 늦춰도 계획수행에 장애가 없는 것이라면 공명선거분위기를 위해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적혀 있었다.
기자들은 자료에 적힌 내용이 김위원장의 의견이냐고 물었고 『그렇다』는 실무진의 대답을 들었다. 그러나 회견내용이 방송과 통신을 통해 보도되기 시작하자 선관위는 『위원장은 그렇게 말한 사실이 없으며 보도자료는 실무진의 검토자료일 뿐』이라는 정정보도 요청 공문을 황급히 각언론사에 돌렸다.
선관위는 자신이 한 옳은 말을 하지 않았다고 잡아떼고 있다. 『선거가 임박한 시기에 선심행정 의혹을 살 우려가 있고, 발표시기를 늦춰도 차질이 없는 것이라면 지역개발 공약을 자제하는것이 바람직하다』는 말에 무슨 반대의견이 있겠는가. 당연하고도 당연한 그 말이 중앙선관위장의 의견이 아니라면, 그의 진심은 무엇인가.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소동이 고소를 금치 못하게 한다.
선관위의 정정보도 요청은 선관위의 존재이유를 스스로 부인하는 것이다. 그 정도의 부담도 지지 않고 지방선거를 관리할 생각이었다면, 그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옳다. 대통령이 아무리 공명선거 의지를 천명해왔다 해도 선관위의 의지가 그처럼 허약해가지고는 엄정한 심판의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 앞으로 수 없이 일어날 여야의 첨예한 대립에서 선관위가 어느 한쪽의 눈치를 보며 소신을 바꾼다면 공명선거는 물건너 갈 것이다.
대통령은 선관위가 취소하려던 말에 귀기울이고, 선관위가 왜 그말을 취소하려 했는지 관심을 가져야 한다. 발표시기를 늦춰도 지장이 없는 것이라면 굳이 이 시기에 지역개발을 약속하여 의심받을 이유가 없다. 오랜 야당시절 선거 때마다 엄청난 여당 프리미엄과 싸워야 했던 대통령이 초도순시에서 지역개발을 공약하는 모습은 보기에도 좋지 않다. 선관위는 정정보도 요청을 취소하고, 자료에 적었던 옳은 주장으로 돌아가야 한다.<편집위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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