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산그룹 박성섭회장을 구속한 검찰은 이번 사건을 『한 사업가의 무모한 사업확장 야욕이 빚은 일대 사기극』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번 사건이 부도덕한 기업과 고질적인 금융부조리, 무능하고 부실한 행정이 함께 가세해서 빚어낸 한국형 복합비리의 전형으로 규정돼야 한다고 본다. 기업인과 금융인은 물론이고 정부도 이번 사건에 함께 책임을 지고 뼈아픈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70년대 후반 이후 수십년을 두고 끊임없이 재발되고 있는 이런 유형의 고질적 금융비리를 뿌리 뽑을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이 이번 기회에 다시 마련돼야 할 것이다.
구속된 박회장은 기업활동을 시작한지 단 2∼3년만에 19개 회사를 설립했고, 자본잠식과 적자행진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일간 「오늘」 설립등 끝없는 변칙적 문어발 확장을 계속, 28개 계열기업을 거느리는 재벌집단을 만들어냈다.
박회장은 무리한 확장을 말리는 임원들에게 『부채총액이 1조원을 넘어서고 외형이 30대 그룹에 들게 되면 정부가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때문에 부도처리를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한국적 금융부조리의 정곡을 찌른 섬뜩한 말이 아닐 수 없다.
82년 이후 최고율을 보이고 있는 부도사태 속에서 건실한 중소기업들도 자금난때문에 줄줄이 쓰러지고 있는데 어떻게 자본금 고작 3백억원으로 「재벌놀이」를 하고 있는 덕산에 8천억원에 가까운 거대한 여신이 나갈 수 있는 것인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단 벌여놓기만 하면 은행도 어쩔 수 없이 말려들고 정부도 어쩌지 못한다는 우리나라 특유의 고질적인 금융병폐가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은행을 비롯한 15개 관련금융기관들은 일이 이렇게 될때까지 무엇을 했으며 금융감독기관과 정부는 또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한심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과분한 거대여신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부정 비리가 없었는지,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는 막대한 대출금의 사용처는 어떻게 된건지, 더 이상 은닉재산은 없는 것인지등에 대해 앞으로 수사가 더 계속되겠지만 우리가 보다 더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다시 이런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70년대 후반 율산이나 대봉 제세등 이른바 「무서운 아이들」이 벌였던 재벌놀이의 재판을 보는 것 같은 이번 사건에서 우리는 우리 금융의 여전한 낙후성과 그 고칠 수 없는 고질병의 재발을 보는 느낌이다.
일부 철없는 기업인들의 비윤리와 부도덕성을 탓하기 전에 그 철없는 사람들에게 희롱당하고 있는 은행과 금융기관들, 감독관청의 각성을 먼저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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