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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직한 법학교육상/최종고(한국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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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직한 법학교육상/최종고(한국논단)

입력
1995.03.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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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근대적 사법과 법학교육이 1백주년을 기념하는 해에 느닷없는 강풍이 불어 흉흉한 분위기가 되고 있다. 세계화와 교육개혁이라는 회오리바람으로 사법부와 변호사계 법학계가 뿌리째 흔들리는 위험수위까지 올라 있다. 특히 「로스쿨」이라는 생소한 이름이 등장하여 일반국민은 개혁의 일환이라는 여론몰이에 휩싸여 그 내용을 잘 알지 못하면서 지지하는 듯하기도 하고, 그 부적절함을 지적하는 법전문가들이 반개혁세력이나 집단이기주의로 매도되기도 한다. 법학도들의 동요는 말할 필요도 없다. 사법개혁이 법조인의 의견을 무시하고 행정부에서 강공하여 이루어질 수는 없다. 그리고 변호사수를 무작정 늘림으로써 사법개혁을 이룰 수 있다는 경제학적 논리는 사려있는 국민을 납득시키기 힘들다. 신뢰할 만한 법률가를 배출하기 위한 법학교육과 시험제도가 무엇보다 중요한 관건이다.

 한국의 법학은 해방후 법치주의의 초석을 놓기 위해 새 출발을 하였으나 혁명과 쿠데타, 군사통치로 발전이 저해되고 침체상태를 벗어나지 못해 왔다. 한해에만 7천명이 넘는 졸업생 가운데 사법시험 합격자는 3백명도 안 되는데다 선심정책으로 누구나 사법시험을 무제한 응시할 수 있도록 풀어 놓았으니 법학의 학문성은 불을 보듯 변질되기 마련이었다. 전국의 법학교수는 6백명선에 불과하여 1인당 1백여명의 학생을 지도해야 된다니 바른 교육이 될 리 없다.

 이미 60년대에 유진오 박사는 점증하는 법학내용을 담기 위해 법대 5년제를 주장하였다. 80년대에는 법학내용이 더욱 증가하여 2년을 연장해야만 제대로 교육할 수 있겠다는 분위기로 발전했다. 작년에는 전국법과대학장회의를 열고 진지하게 6년제를 논의하여, 모든 대학이 한꺼번에 실시할 수는 없으니 가능한 대학부터 시작하면 점차 법학교육이 정상화할 것이라는 대체적 합의에 이르렀다.

 그런데 금년 1월말 갑자기 청와대에서 미국식 「로스쿨」이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하여 혼미를 불러왔다. 사립대학들은 위기의식과 선점의욕으로 충분한 논의도 없이 저마다 로스쿨을 하겠다고 나섰는데, 자신들의 열악한 여건을 몰라서가 아니라 법학중흥의 의욕을 즉각적으로 표현한 것이었다고 보인다. 논의해 볼수록 미국식 로스쿨은 한국사정에는 맞지 않는다는 사실이 판명되면서 「독일식 로스쿨」이니 「한국형 로스쿨」이라느니 알 수 없는 작명들이 언론을 메웠다. 중요한 것은 한국의 여건에서 어떤 내용의 법학으로 어떤 학제로 개선해야 할지를 합의하는 일이다.

 우리는 오늘날 「세계화」의 시대에 국제경쟁력을 키워야 할 시대적 과제를 안고 있다. 법전문가는 법학실력을 잘 갖춘, 한 마디로 법학이론과 법조윤리, 게다가 법률실무를 잘 할 수 있는 자질과 능력을 갖춘 인물이어야 한다. 전자만 갖추면 실무에 어둡고, 후자만 갖추면 법률기술자 내지 법률상인이 된다. 어떻게든 이 두 요구를 흡족시키는 온전한 법률가를 배양하는 것이 한국법학교육의 목표이다. 이 목표를 향해 4년제 법학교육을 개선하기 위하여는 2년을 더 늘려 6년제로 하면 적당할 것이다. 인간의 육체적 생명을 다루는 의학을 6년 가르치는데 정신적 생명을 다루는 법학이 그보다 부족해서 되겠는가? 「로스쿨」은 3년을 가르치는 것이긴 하나 4년 학부의 밑받침이 너무 취약해진다. 다양한 전공자를 개방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취지는 현실적으로는 부작용이 더 커질 것으로 보이며, 학사편입제도를 확대활용하면 충분할 것이다.

 물론 6년제를 한다고 저절로 법학교육이 정상화하고 법조계가 개선되는 것은 아니다. 사법시험을 법학교육의 연장선상에서 대폭 개선하고 합격자수를 졸업생의 10%인 7백명선은 확보해야 할 것이다. 응시요건, 시험과목을 잘 조정하면 할 수 있는 일이다. 6년제를 졸업한 법합석사에게는 1차시험을 면제해주고 2차시험에 법철학같은 기초법학과목을 포함하기만 하더라도 법학교육과 고시풍토는 확연히 달라질 것이다.

 「개혁」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정도의 「개선」으로는 불충분하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김영삼대통령때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정치논리로 이번 기회에 뿌리뽑자는 식이야말로 위험한 발상이다. 이만큼 근본적으로 민족의 대계를 위해 중장기적 계획이 필요한 사안이 어디 있겠는가? 필리핀은 로스쿨제도를 잘못 도입해 혼란에 빠져 있고 일본에서의 주장도 넓은 지지를 얻지 못해 가라앉았다고 한다.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도록 과감한 사법개혁을 하라고 대통령이 지시했다지만, 과감한 개혁이란 무모하거나 빗나간 개혁을 뜻하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점진적, 지속적으로 개혁해나갈 수 있는 설득력과 공감대를 가져야만 다음 정권에 가서도 무너져 내리지 않는 참 개혁이 될 것이다.<서울대 교수·법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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