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판에서 대화와 협상이란 원만하게 이견을 조정하는 수단으로 바람직한 것이다. 여야간의 극한대립이 고질화되어 있는 우리 정치풍토에서는 타협이 더욱 환영받고 있는게 사실이다. 지겨운 대치상태에 지치다 보면 타협이나 절충이란 말만 들어도 무조건 귀가 번쩍 뜨일 정도다. 그러다 보니 대결 대신 절충에 의한 문제해결이라면 최상의 정치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 막판의 극적 타결이란 마술의 순간에 흥분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이성을 찾게 되면 여야간 타협의 산물이 반드시 지고지선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양쪽이 하나 주고 하나 받는 식으로 거래를 하다 보니 중간선으로 절충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고 이 결과는 원칙과 기준이 결여된 기형아의 모습으로 나타날 때가 있는 것이다.
최근의 예를 들자면 지난번 임시국회에서 보여준 기초자치단체선거의 정당공천여부 처리결과를 꼽을 수 있다. 여야가 하나씩 주고 받는 식으로 흥정을 하다 보니 단체장은 공천하되 의원후보는 공천하지 않는 이상한 결론을 내리게 된 것이다. 국가나 국민적 견지에서 볼 때 일관된 기준이 상실된 결과가 나왔다.
그런데 그러한 웃지 못할 해프닝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번에는 국회의원 선거구획정 작업과정에서 비슷한 현상이 또 빚어지고 있다. 같은 국회의원 선거구를 획정하는데 적용하는 기준이 지역에 따라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지역은 인구 30만명을 기준으로 그 이상의 행정구역은 두개의 선거구로 나눠지는데 도농통합지역만은 21만(여당 주장)이나 25만명(야당안)의 기준을 적용하자는 쪽으로 협상이 계속되고 있다. 두개의 잣대로 선거구를 쪼갠다는 말이다.
이처럼 예외를 인정하자는 이유는 무엇인가. 도농통합 시군에 대해서는 선거구를 현행대로 유지한다는 묵계가 있었다는 얘기도 있다. 또 농촌쪽을 배려한다는 명분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원칙을 저버린, 또 하나의 불합리한 결론을 유도하는 타협과 흥정의 산물이다. 이런 식으로 기준과 원칙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도농통합지역만 특례로 해서 선거구를 늘린다는 것은 누가 봐도 이해가 안간다. 더구나 그 지역들의 대부분이 현역 여당 의원의 선거구라면 위인설관의 게리맨더링이라는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여야간의 협상이나 타협이 아무리 좋은 해결방법이라 하더라도 일관된 기준과 원칙을 떠나서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다. 국회의 선거구획정위원회가 이미 확정한 인구 7만∼30만명의 기준도 최소 선거구와 최대선거구간의 편차가 4대1을 넘어서고 있기 때문에 위헌론까지 제기될 우려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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