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가죽가방 명성 세계적 패션재별/가족간 재산다툼와중 도 불행/1906년 창업… 파올로 구치는 피살자 사촌 마우리치오는 밀라노에서 출근길에 괴한의 총격을 받고 비명횡사했다. 누가 마우리치오를 죽였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고급스런 가죽가방과 액세서리 소품들로 이름난 이 패션 명가는 53년 창업주 구치오 구치의 죽음 이후 내내 가족간의 재산다툼으로 불화를 겪어왔다.
구치오 구치는 큰 아들 알도와 작은 아들 로돌포에게 절반씩 회사 지분을 물려주었다. 그러나 이들 형제는 아버지 장례식에서 흘린 눈물이 채 마르기가 무섭게 회사를 독차지하려는 법정 싸움으로 수년을 보냈다.
피살된 마우리치오는 로돌포의 아들로 83년 사망한 아버지의 지분을 상속받아 큰 아버지인 알도 일가와 경영권 다툼을 벌였다. 2대에 걸친 이 싸움에서 마우리치오는 큰아버지와 사촌들을 회사에서 쫓아내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마우리치오 자신이 다른 가족들에 의해 상속세 포탈 혐의로 기소돼 항소심까지 간 끝에 무죄판결을 받기는 했지만 한때 스위스로 몸을 피해야 했다. 마우리치오의 혐의는 아버지 로돌포가 죽기 전 그의 서명을 위조해 주식을 양도받았다는 추잡한 내용이었다.
마우리치오가 스위스에 피신해 있는 동안 구치사 경영권은 정부가 임명한 밀라노대학 교수에게 맡겨짐으로써 구치사에 첫 외부경영자가 들어왔다.
형제간, 큰아버지와 조카간, 그리고 사촌들간의 어지러운 법정 소송으로 구치가의 명예는 너절해질대로 너절해진 상태에서 87년 마우리치오의 큰 아버지인 알도 일가는 무리한 사업확장에 따른 빚을 견디다 못해 지분을 팔아치웠다.
구치와는 또다른 브랜드인 「파올로 구치」는 알도의 아들중 유명 패션디자이너인 파올로 구치가 독자적으로 만든 것이다.
그뒤 스위스에서 돌아온 마우리치오는 회장직에 복귀하지만 알도 일가의 지분을 인수한 아랍투자은행과 경영 불화로 93년 자신의 지분을 아랍투자은행에 팔고 회장직을 내놓았다. 이로써 창업주의 죽음 이후 40년만에 구치사는 완전히 구치 일가의 손에서 떠났다.
구치사의 신화는 1906년 피렌체의 작은 마구점에서 시작됐다. 말안장 등을 팔던 구치오는 전에 런던의 고급호텔에서 웨이터로 일하면서 익히 보아둔 상류사회의 고급스런 취향을 살린 가죽가방을 내놓아 대성공을 거뒀다. 구치의 가게는 로마와 밀라노로 진출했고 2차대전 이후 파리와 뉴욕, 런던을 사로잡으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누렸다. 엘리자베스 테일러, 그레이스 켈리도 구치의 고객이었다.
창업주 구치오는 빈 손으로 대기업을 일궈내는 신화를 이룩했지만 그 신화는 상속자들의 집안싸움으로 박살났다. 마우리치오의 죽음은 이를 확인시켜 주는 마침표가 됐다.<오미환 기자.< p>오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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