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토함산에 오르는 사람들중 한숨을 쉬는 사람이 많다. 산마루가 높아 힘들어서가 아니다. 석굴암 바로 아래에 깔린 아스팔트 길로 오가는 자동차를 보고 그러는 것이다. 석굴암 턱밑을 찌르듯 올라와 있는 시멘트 계단과 건물도 아스팔트 길과 더불어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유식과 무식이 제각기 박해를 가한 현장」이다.
석굴암 대불은 한 민족의 문화재 차원을 떠난 인류의 문화유산이다. 이 위대한 문화유산을 보려면 숨이 좀 차더라도 옛 사람처럼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그래야 동해 바다를 차고 떠오르는 일출의 장엄함과 토함산의 정기를 몸으로 느낄 수 있다.
지난 18일 하오 세종문화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경주 문화재 보존 공개 세미나」는 예정시간보다 한시간 늦게 시작했다가 곧 중단됐다. 이 소동은 한국고고학회 미술사학회등 16개 학회의 보존주장을 경주 상공인단체가 반대해서 벌어진 갈등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지금까지 쌓여온 문화유적 보존정책등에 대한 불신이 폭발한 것이었다.
연간 6백만명이 찾는 경주는 개발제한으로 시민생활이 많은 지장을 받아왔다. 법도 지나치게 경직되게 운용됐다. 무너진 집을 고쳐도 범법자가 되기 일쑤였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동해안 양북면 일대에 폐기물 처리장을 만들려고 계획을 세웠다가 커다란 반대에 부딪쳤다.
그동안 정부는 고도를 세계적 관광지로 발전시키지도 못하면서 이처럼 희생만 강요해 왔다. 뒤늦게 경부고속전철의 경주통과와 경마장 건설계획을 세웠으나 학계의 반대로 곤혹스런 상황에 처했다. 16개 학회는 이런 계획이 우리 세대가 민족사에 저지르는 최악의 범죄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경주는 국민들의 교육도장으로 가장 아껴야 할 유적지다. 이 때문에 경주 문화재 보존문제는 관련학자나 경주시민 그리고 정부 당국자만의 일이 아니다. 우리들 모두의 일로 세계인과 후세에 책임져야 할 문제다.
더 이상 미룰 수도 피할 수도 없다. 시범 구간일지라도 고속전철은 한창 건설중이다. 이 문제는 5월의 전국역사학대회에서 학자들이 당연히 다시 제기할 것이고 선거의 달인 6월에는 뜨거운 지역 현안이 될 것이다.
유적보호와 지역의 이해가 서로 부딪치지 않는 해결책은 무엇일까? 이를 찾는 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의 명제다.<생활부장>생활부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