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세계화 실천방안이라 하여 6개 지표중에 사법개혁이라는 네 글자가 보이더니 어찌된 영문인지 한바탕 될 말, 안될 말의 법조계 비난몰이의 바람이 불어댔고 이어 정부의 여론조사결과라 하여 사법개혁의 불가피론이 나왔다. 그후 행정부내에 마련된 세계화추진위원회라는 곳에서 불과 한달 남짓한 기한내에 법조양성제도를 미국식으로 일대 변혁을 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명하였다. 그리하여 마치 법조양성제도의 개혁이나 법조인구의 증대가 세계화촉진의 가장 큰 중대과제인 듯 떠들썩하다. 선진사회란 힘의 지배가 아닌 법이 지배하는 사회여야 하므로 법전문가의 양성과 공급도 과제중의 하나임에는 틀림없으나 만일 정부가 지난날 힘의 통치를 불식하고 이 땅에 진정한 뜻의 법치를 실현하기 위해 그 일환으로 이 제도를 다루겠다는 것이라면 먼저 「법의 지배」의 기본구상을 세워 미래의 사회변화를 장기적으로 전망하고 그 속에서 사법개혁의 기본적인 방향과 구조를 설정한 다음 이 나라 법률제도의 모양을 그려놓아 그것이 타당한가를 심층분석하고 그 얻어진 청사진속에서 유기적으로 그 모습을 찾아내야 옳은 일이다. 「사법개혁」작업에 과연 그러한 기본구상이 있는지의 여부를 알 길이 없으나 언론보도대로라면 정부내 몇분의 법학자가 주축이 되어 대법원의 양해아래 4월25일까지 사법대학원제도와 법조인구증원 및 판검사임용제도에 대한 정부안을 확정하겠다고 하고 이미 구체안까지 공표하였다고 한다.
알려진 정부안중 판검사 임용방안은 후일로 미루고 먼저 법조양성제도 개혁의 개요를 살펴보면 대학내에 전문대학원을 두어 대학이 입학시험을 실시하고 대학원수료자에 대한 국가시험의 방법으로 70∼80%에게 변호사자격을 주겠다는 것인즉 대학원입학은 거의 변호사자격을 보장받게 된다. 그렇게 되면 결국 건국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정부가 관장하여 오던 사법시험업무를 대학이 가져가고 법원에 소속된 사법연수원이 맡고 있는 사법시험합격자에 대한 법조교육을 대학이 관장하겠다는 것으로 귀착된다. 이러한 전제아래 「사법개혁안」이 내세우고 있는 명분을 크게 나누어 보면 법조인구의 증원을 통한 법률서비스의 개선, 법조인력의 전문화와 질적 향상을 들고 있다.
사법시험과 법조교육업무를 대학으로 옮기는 일이 위 두 가지의 과제를 개선하는 지름길인지를 생각해보자. 첫째, 법조인구의 증원은 시험실시기관이나 교육기관과는 관계없는 일이다. 업무를 정부가 계속 관장하면 법조인력의 적정공급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불신때문에 대학이 가져가야 한다면 대학은 믿어도 정부는 못 믿겠다는 것이 된다. 과연 그런가. 또 그래서 되겠는가. 매우 착잡한 생각이 든다. 다음으로 법조인력의 전문화와 자질향상의 경우도 이치는 같다. 법원과 같은 법조의 실수요기관은 능력이 없고 대학만이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지금 지구화 개방화에 밀려 사회는 나날이 복잡해지고 법규범이 차지하는 비중이 증가추세에 있어 대학원 3년정도의 교육기간으로는 법조인으로서의 기초교육에도 미흡하다. 현재 사법연수원의 2년 교육기간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만일 대학원 안에서 다시 전문분야를 나누어 교육을 한다면 오히려 기초조차 다지지 못하고 질적 저하를 가져올뿐이다.
미국의 클린턴대통령은 선거이슈의 하나로서 「변호사망국론」을 내세웠다고 한다. 식자들은 미국을 「소송사회」라고도 한다. 미국경제가 뒤지게 된 것이나 미국인의 단합이 안 되는 까닭중의 하나가 무정견한 변호사양성에 있다고 개탄한다. 여러 선진국의 법조양성 제도속에서 왜 하필이면 현상태로는 실패하였다는 미국것을 본받으려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길이 없다. 그들의 제도는 그들대로의 연혁이 있고 그들의 문화와 전통의 산물이다. 그리하여 지금 그들은 제도를 뒤엎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각도로 보완개선하고자 애를 쓰고 있다.
우리는 건국후 47년간 그 어지러운 세태 속에서도 오늘에 이르는 법조양성제도의 공정성이나 평등성에 의심을 가져 본 일이 없다. 법관, 검사, 변호사가 통일된 제도로서 관민의 구별없이 사법의 기능에 대한 공통된 의식아래 그 제도가 유지되어 왔다. 지금 이미 확립된 오늘의 제도를 하루아침에 버리고 며칠내에 대학이 그 모든 것을 맡기로 큰 모험을 하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난 날 서울대학교내에 사법시험합격자를 위한 사법대학원을 설치하였다가 성과를 못 거둔 경험을 가지고 있다. 개혁의 이름아래 황급하게 저지를 일이 결코 아니다. 겸허하고 냉철한 자세로 무엇이 국민을 위한 사법개혁인가를 신중하고 진지하게 생각해볼 때이다. 만일 그 방향의 선택이 빗나갔을 때 바로 우리의 후손들에게 큰 화근을 안겨주게 되기 때문이다.<변호사·전대한변협회장>변호사·전대한변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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