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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와 제3세계/김수종 국제1부장(데스크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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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와 제3세계/김수종 국제1부장(데스크진단)

입력
1995.03.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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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경선에 출마했던 김철수 통상대사가 미국과의 막후협상을 통해 사무차장 자리를 확약받고 총장후보에서 후퇴한 사실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그동안 아시아를 대표하는 후보로서 김후보를 힘껏 밀어왔던 아시아, 아프리카 즉 제3세계 국가들이 「한국측의 무대뒤 흥정」에 반발하고 있다는 국제여론이 외신으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우리 외무부는 사무차장 자리라도 따낸 것은 외교성과라고 자위하고 있다. WTO 사무차장은 결코 작은 자리가 아니다. 유엔에 17번째로 분담금을 많이 낸다고 자랑하는 한국이지만 유엔본부 국장급 간부직의 자리 하나 탄탄히 지켜줄 힘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들이 『우리가 제네바에서 총장선출을 논의하는 동안 한국과 미국이 다른 곳에서 뒷거래를 했다』고 반발한 사실은 짚어볼만 하다. 외무부가 그런 미숙함을 시인했다는 소식은 제3세계에 대한 한국외교의 고질적인 시각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즉 미국이 가는 대로 가면 되고, 미국에 거역해봤자 별 수 없다는 생각이다.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이 되겠다는 나라가 유엔회원국의 70%에 이르는 제3세계 외교에 사실상 무관심이었다는 반증이다.

 미국 사람들도 세계를 보는 눈을 달리하고 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인들은 「미국속의 세계」를 보며 오만한 자긍심속에 살았다. 그러나 90년대에 들어와서 미국인들은 「미국밖에 새로운 세계가 떠오르고 있다」는 인식의 전환을 하고 있다.

 미국은 냉전시대에는 안보에 모든 것을 걸고 자국의 경제를 다소 희생하더라도 우방과의 유대를 중요시했다. 그러나 어느날 냉전이 끝났을 때 미국은 자국의 경제가 일본과 독일에 크게 잠식당하고 있을 뿐 아니라 아시아 신흥공업국과 중국등의 공업생산력이 우후죽순처럼 커가는 것을 실감하게 됐다. 그래서 미국은 상대적으로 쪼그라든 자국의 위치에 일종의 초조감을 느끼고 있다.

 소위 탈냉전시대의 대통령으로 집권한 클린턴 행정부는 탈안보시대의 국가전략의 하나로 국가경쟁력 증대를 공약으로 내놓았다. 그 중에 근간을 이루는 것이 거대성장시장(BEMS)을 공략하는 새 통상정책이다. 이 통상정책의 디자이너인 제프리 가튼 미상무차관은 「성장이 정체상태에 이른 유럽과 일본시장을 더 열려고 악을 쓰는 것 보다 미국시장에 힘입어 연간 10% 전후로 성장하는 말랑말랑한 신흥 성장국가를 개방시키는 것이 힘도 덜 들고 효과도 크다」는 기막힌 아이디어를 창출해낸 것이다. 한국도 미국의 주요 공략대상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나라는 냉전과 탈냉전의 시대를 같이 살고 있지만 이미 흐름은 탈냉전의 시대이다. 그리고 한국을 부러워하고 배우고 싶어하는 나라도 많이 생겨났다. 그래서 정부도 국력에 걸맞는 국제적 역할을 하겠다고 나서고 있고,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에서 중간자적 역할을 한다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정작 『한국의 목소리가 무엇이냐』는 국제적인 질문을 받고 있다.

 그동안 국제무대에서 한국은 덩치에 비해 자기 목소리가 없는 국가로 알려져 있다. 우리 외교관들의 마음이 세계속에 살지 않고 미국속에 살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미국의 힘의 논리가 세계를 많이 지배하지만, 그런 미국도 변하고 세계도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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