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그 아들의 말(장명수 칼럼)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그 아들의 말(장명수 칼럼)

입력
1995.03.24 00:00
0 0

 한 단란했던 가족, 남들이 부러워하던 성공적인 가정이 한순간에 파괴되는 모습을 우리는 보았다. 단신 월남하여 자수성가한후 육영사업에 정성을 쏟았던 아버지, 잘 성장한 2남3녀, 사랑이 깊은 어머니…. 그 행복했던 가정은 지난 14일 장남이 아버지를 살해하면서 산산조각이 났다. 『아버지를 따라 자결하자』는 주장이 나왔을만큼 그들은 비탄에 잠겨 있다. 그 비극적인 사건은 가족사이의 애증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사랑이 두드러지기도 하고, 증오가 드러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가족관계에는 사랑과 증오라는 두개의 얼굴이 있다. 사랑과 증오는 다 자제하기 어렵고, 때로는 폭발적인 파괴력을 갖기도 한다. 가족은 끝없는 자기희생과 사랑으로 뜨겁게 결속되기도 하지만, 얼음같은 이기심과 증오로 쉽게 깨지기도 한다.

 금용학원 이사장 김형진(72)씨를 죽인 아들 김성복(42)은 범행동기가 아버지의 재산을 노린 것만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주장했다.

 『…아버지와 나는 가치관의 차이로 심한 갈등을 겪어왔다. 아버지가 바라는 길과 나의 길은 처음부터 달랐다. 아버지에겐 진실만 통하고 가식은 통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항상 불쌍한 사람에겐 모든 것을 주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겐 1원도 줄 수 없다고 말해 왔다. 아버지는 내가 사람이라면 저사람도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불교신자인 아버지는 내가 기독교인인 지금의 아내와 결혼하려 하자 아내에게 불교로 개종하겠다는 각서를 요구했다. 열사람이 한사람을 위해 살아야 한다면 그것을 어떻게 가족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의 어머니(63)는 이렇게 말했다.

 『남편은 보수적이지만 자상했고, 굳이 흠을 잡는다면 너무 강직하고 꼿꼿하다는 것이었다. 남편은 이 세상의 무엇보다도 가족을 중시했고, 특히 큰아들에게 기대가 컸다. 표현은 안했지만 장남이 가장 큰 재산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가족을 이끌어가려는 강한 아버지와 가족사이의 갈등은 흔히 볼 수 있는 것인데, 김형진씨도 그런 아버지였던 것 같다. 그러나 42살의 대학교수가 아버지를 칼로 찔러 죽인후 「강한 아버지」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았다는 것 자체가 다시 한번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가치관이 다른 아버지를 죽일만큼 증오하면서 그는 왜 아버지의 재산에는 의존했는가.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아버지로부터 독립하지 못한 「40대 미숙아」의 반항이 아버지 살해였단 말인가.

 가족은 혈육인 동시에 각자 자신의 생을 살아가는 타인이다. 혈육이면서 타인인 관계가 빗나갈 때 얼마나 무서운 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 잠재된 불행이 얼마나 깊을 수 있는가를 그 사건은 보여준다. 그 참혹한 사건을 확대해석할 필요는 없지만, 우리가 새길 교훈은 많다.<편집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