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은희의 「오늘이 가기전에 사랑한다고 말하리」 T.S.엘리엇의 「황무지」에는 <오 그대 키를 잡고 바람 불어 오는 쪽을 바라보는 자여 플레바스도 한때는 그대처럼 얌전하고 키가 컸다는 것을 잊질 말라> 는 구절이 나온다. 오 그대 키를 잡고 바람 불어 오는 쪽을 바라보는 자여>
우리 신인들도 이제는 저 혼자 시를 쓴다는 고립감에서 벗어나서 선배시인들과 한자리에 둘러 앉아 시를 주고 받는다는 연대감을 회복해야 할 시기가 되었다. 모이면 시회를 열던 우리 시의 전통이 아직도 남아 있고 영향사와 수용사가 가능할 만큼 우리 시의 연륜이 이미 성숙되어 있기 때문이다. 최영미의 시집은 결코 고립된 현상이 아니다. 최영미는 김초혜와 이해인같이 잘 팔리는 시인들의 옆에 있고 최명자와 정명자와 같은 노동자시인들의 옆에 있으며 부정의 파토스에 근거한 강은교 고정희 최승자등의 뒤에 있다. 「여류시」와 「청미」의 동인들을 고려하지 않고 이연주와 정은숙에 대하여 언급하는 것은 온당한 비평태도가 아니며 홍윤숙과 김남조의 작품을 건너뛰며 현역시인에 대하여 논의하는 것은 비평가로서의 예의가 아니다.
이번에 나남출판사에서 다섯번째 시집 「오늘이 가기 전에 사랑한다고 말하리」를 상재한 추은희도 57년에 첫 시집 「시심(시심)의 계절」을 낸 이래 거의 10년에 한 권씩 꾸준히 시집을 내고 있는 현역시인이다.
40년이 넘는 시의 여정에서 추은희는 사랑과 진실 그리고 순수를 완강하고 집요하게 탐색해 왔다. 그러나 그녀의 사랑과 순수는 병과 죽음을 직시하고 견뎌내는 용기를 통해서 드러나며 그녀의 진실은 <빌딩 숲 속 밤이면 밤 낮이면 낮의 낯선 도시> 또는 <고층건물 숲 속에 서툰 문명의 손짓 발짓 박제된 시간> 을 통해서 나타난다. 추은희는 결코 그늘을 숨기며 빛을 보이려 하지 않는다. 어머니의 병상을 떠나 자식을 만나기 위해 춘천행 열차를 기다리는 마음의 명암을 그려낸 「어머니 병상일기」를 보면 우리는 추은희의 좁은 세계가 견고한 리얼리즘에 근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순수와 진실은 그녀에게 「침침한 늪을 지나서 일어서는 봄처럼」 찾아 오고 「하늘에서 더는 견딜 수 없어 내리는」 눈처럼 습격한다. 고층건물 숲 속에> 빌딩 숲 속>
그러므로 「그저 오늘을 이대로 살 수 있는/그런 나로 있게 하소서」라는 그녀의 기도는 세상의 불의에 순응하는 것이기는 커녕 병과 죽음과 폭력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들과 맞서서 순수와 진실을 보존하고 「사람 사랑하는 일/그곳에」 이르고야 말겠다는 투쟁의 결의다.<김인환 고려대교수·문학평론가>김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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