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선 광역단체장은 본격 지방화시대에 걸맞는 권한을 행사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선진국과 비교할 때 그 권한은 여전히 「제한적」이라는게 일선 지자체 공무원과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민선 시·도지사의 허와 실/업무조정·감사·예산 3대행정 중앙관장/국가직공무원 지방직화돼야 인사 장악내무부는 지난해 지방화시대 개막에 대비, 「지자체 행정기구와 정원기준등에 대한 규정안」을 내놓았다. 97년까지 단계적으로 지방정부의 인력과 조직의 개편을 추진하겠다는 내용이다. 지자체내 국가직 공무원의 지방직으로의 전환, 시도지사의 조직개편권한 확대등이 주요골자이다. 이 계획이 완료되면 민선 단체장은 우선 본부장 및 국실장에서부터 하위직 공무원들에 이르기까지 소속 공무원의 인사권을 대부분 장악할 수 있게 된다.
「단계적」이라는 단서가 붙어 있긴 하지만 이것은 민선 단체장의 알파이자 오메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컨대 서울시장의 경우 3개 사단병력에 맞먹는 5만1천명이 넘는 직원인사에 대한 최종 결정권을 가진다. 지난해까지 경기와 충남의 경우 지사가 마음대로 임명할 수 있는 과장은 각각 48, 49명중 10명과 9명에 불과했다. 80%에 가까운 과장들이 중앙부처가 임명권을 갖는 국가직 공무원이었기 때문이다.
과장급 이상으로 올라가면 국가직의 편중현상은 더욱 심하다. 그러나 이들이 지방직으로 전환되면 몇명을 제외한 간부들의 인사권도 시장 또는 지사가 쥘 수 있다. 이와함께 계단위 조직개편은 단체장의 전권사항이 된다. 아울러 과이상 단위에 대해서는 총무처장관과 협의, 내무부규정이 정한 기구수와 규모의 범위안에서 개편을 추진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는다.
하지만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내무부규정에 의하면 시도의 기획관리실장, 감사관, 보건사회국장, 산업경제국장, 민방위국장, 예산담당관, 비상대책과장등 7인은 반드시 국가공무원을 임용토록 돼있다. 이중 기획관리실장(1급)은 시도정의 통합조정, 예산편성 및 장단기 업무계획수립, 조직 및 정원관리등을 담당하는 최고 실무책임자이다. 또 감사관(2·3급)은 사정 및 감사, 진정사항조사를 담당하며 예산담당관(4급)은 일선에서 예산편성 실무를 맡고 있다.
결국 지방행정의 중심축이라고 할 수 있는 업무조정―감사―예산의 3대권한은 여전히 중앙정부의 손에 남아 있게 된다는 것이다. 더구나 광역단체장의 경우 시·군·구등 기초단체장에 대한 인사권을 행사할 수 없게 돼 명성만큼의 정치적 힘이 뒷받침될지는 의문이다.
단체장이 자율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소관업무도 큰 변화가 없다. 즉 순수 자치단체사무는 관련 법률과 부령에 규정된 지자체의 모든 기능과 사무 1만5천7백74개중 13%인 2천1백10개 정도에 여전히 머무르고 있다. 주요업무는 지역개발을 위한 단위기본계획수립, 직장예비군 및 민방위대 편성운영, 수입증지관리, 식품접객업소 행정처분, 노인복지시설 지원관리, 대규모 소매점관리등으로 대부분이 민원과 관련한 단순업무이다. 나머지는 중앙정부가 직접 관장하는 국가사무(75%)와 중앙정부에 속하나 편의상 지자체에 위임된 지방위임사무(12%)이다.
여기에 서울시와 일부 광역시는 재개발구역 지정권, 택지개발 예정지구 지정 및 해제권, 주거환경개선지구지정 및 변경권, 10년이상 자체문서 폐기권, 도시계획결정권등 4백98개 사무의 이양 또는 위임을 추진하고 있다.
◎지자체와 중앙정부의 관계/지방고유사무 20%불과/지휘계통서 갈등 우려도/중앙·지방 조화와 협조가/지자제성공의 선결요건
90년7월 강영훈 당시총리가 터키를 방문했을 때 터키정부는 한국과의 경제협력을 희망, 극진한 대우를 했다. 강전총리가 수도 앙카라를 떠나 최대도시인 이스탄불시로 향하자 터키정부는 이스탄불시에 『정중히 모셔라』는 급전을 보냈다. 그러나 공항에는 이스탄불시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이스탄불주지사가 영접을 나왔다. 강전총리일행은 나중에 연유를 알아본 결과 『주지사는 임명직인 반면 시장은 민선인데다 야당출신이어서 중앙의 말을 고분고분 듣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6·27지자제선거」후 지방자치가 본격화하면 「이스탄불의 진풍경」은 더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이미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경북 영일군이 지난해 5월 정치망 어업면허문제로 해운항만청을 상대로 헌법재판소에 심판을 청구했고 경북도의회는 학군제한에 이의를 제기, 위헌소송을 내기도 했다.
지자제선거후 민선단체장이 등장하면 중앙과 지방간의 갈등은 훨씬 심화될 공산이 크다. 중앙정부의 개발정책을 민선시장이「지역환경오염」을 이유로 거부할 수도 있다. 또 민선지사가 중앙계획과 배치되는 도로획정등을 추진할 가능성도 없지않다. 종전과 같이 지휘계통상 민선지사가 내무장관의 지시를 반드시 이행한다는 법도 없다.
역으로 중앙정부가 국가·위임사무에 대한 회계감사, 교부금 축소등으로 지방자치단체를 압박, 통제력을 강화할 수도 있다. 더욱이 단체장이 야당출신일 경우 중앙·지방간의 견제, 힘겨루기가 전개될 공산이 크다.
하지만 현실여건상 민선단체장이 중앙정부의 간섭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행정업무 재정권 인사권을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자치단체의 지방고유사무는 20%를 넘지 못하고 있으며 국가·위임사무가 대부분이다. 지방사무가 40∼50%에 달하는 미국 독일 등과 비교하면 자치수준에 턱없이 못미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자치단체의 예산편성권은 내무부의 예산편성지침에 의해 통제받는다. 특히 재정자립도가 약한 지방자치단체는 중앙의 교부금에 의존, 사실상의 예속관계에 처할 가능성이 많다. 자치단체의 조례제정권은 벌칙조항을 만들수 없어 한계를 안고 있다. 권한위임도 각종 단서를 두어 무력화한 경우가 많다. 정부수립후 중앙정부가 시도에 넘긴 권한이양이 10%를 넘지 못했다는 통계가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그렇다고 중앙·지방의 관계가 갈등만으로 정형화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자치단체의 창의적인 노력, 중앙의 탄탄한 지원이 어우러지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우선 민선단체장은 표를 의식, 자발적으로 민원이나 지역개발등 현안을 챙기게 된다. 지난시절 단체장들중 주민이나 지역에 무관심하면서도 고위층의 줄로 출세가도를 달렸던 사람도 적지않았다.
한때 『제주지사는 유력정치인의 골프부킹, 공항영접만 잘하면 그만』이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시도지사의 위치가 잘못 설정된 시대도 있었다. 지자제시대에는 중앙과 지방은 과거의 상하관계에서 벗어나 수평적 협력관계로 탈바꿈해야 한다. 지자제와 관련해 두 가지의 도그마가 있다. 하나는 지자제를 만병통치약으로 등식화하는 오해이고, 다른 하나는 지자제로 갈등·무능 부패가 양산될 것이라는 착각이다. 중앙정부와 자치단체간의 관계설정에서 경계해야 할 대목들이다.
서울대 행정대학원의 박동서 김광웅교수는 『중앙의 강압, 지방의 저항이 절제되고 서로 공동선을 추구, 협조관계를 이루면 지자제는 국민들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진단했다.
◎외국의 단체장 권한/미·독 등 연방형태 국가선 사실상 독립정부/국방·외교권만 제외… 예산·치안권등 행사
지방자치가 잘 정착되어 있는 나라의 단체장들은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특히 미국 독일등 연방형태의 국가에서 주정부는 그 자체로 하나의 독립된 정부에 가까울만큼 권한이 막강하다. 외교와 국방만 제외하고 인사 조직 예산 치안권등이 거의 주정부에 이양되어 있다. 미국에서는 주지사에게 주방위군 동원권한까지 부여돼 있으며 사면권과 주판사 임면권이 주어진다.
독일은 주정부가 독자적으로 입법권을 행사하고 각급 학교 교과내용을 결정하는 권한도 갖는다.
예산권의 경우에는 최근 중앙정부에 대한 예산의존도가 높아져 주의 권한이 축소되는 추세이긴 하지만 그래도 우리와 비할 바가 아니다. 우리나라는 지방세율조정은 불가능하고 과태료를 조정하는 정도지만 외국은 세율자체를 주법에 따라 정한다.
지방정부의 인사권도 전적으로 단체장의 권한에 속한다. 연방형태의 국가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와 사정이 비슷한 일본에서도 인사권이 지사에게 일임되어 있다. 타이완(대만) 타이베이(대북)시에서는 경찰국장 인사처장등 4개 자리만을 제외하고 나머지 인사권은 시장이 갖는다. 우리는 단체장이 경찰인사에는 전혀 관여할 수 없고 지방자치단체에 상당수의 국가공무원을 두게 돼 있어 그만큼 단체장의 인사권은 제한을 받게 된다.
우리나라는 지방자치단체에 조례위반에 대한 벌칙제정권이 부여되어 있지 않지만 일본은 도지사에게 형사처벌권한을 주고 있다.
외국도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에 대한 감독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직무이행명령제도는 미국 독일 일본등에도 있다. 그러나 자치단체가 중앙정부의 이행명령에 이의가 있을 경우 대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한 우리와는 절차가 다르다. 즉 일본등에서는 중앙정부가 법원의 결정을 통해 지방정부에 이행명령을 내리는 절차로 돼 있어 그만큼 지방정부의 권한을 보장하고 있는 셈이다.
이같은 제도적인 측면외에도 미국에서는 주지사들이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주지사들은 가장 유력한 대통령후보이고 실제로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경우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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