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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산상속이 빚은 한국적비극/이훈구 연대교수·심리학/전문가 긴급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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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산상속이 빚은 한국적비극/이훈구 연대교수·심리학/전문가 긴급분석

입력
1995.03.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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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복교수의 친부살해사건은 우리 사회의 최고 지성인이며 지도급 인사에 의해 저질러졌고, 피살자가 다름 아닌 자신의 생부였다는 점에서 우리를 경악시키고 있다. 얼마 전 박한상이란 패륜아가 친부모를 살해하기도 했지만, 그는 김교수와는 달리 아직 수학중에 있는 나이 어린 미성숙한 인격의 소유자로 간주될 수 있기에 이번 사건보다는 충격파가 덜하다.

 부모덕에 외국 유학까지 마치고 대학 강단에 서있는 김교수가 생부를 살해하지 않으면 안될 어떤 절박한 상황이 있었는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아직 상세한 내막이 보도되지는 않았지만 김교수는 그가 투자한 해강농수산이란 회사가 파산 위기에 몰려 있고 빚독촉에 시달려 왔다.

 빚독촉에 몰린 김교수가 이성을 잃고 다른 비합법적인 방법으로 해결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얼마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현역 장교가 경마장 노름빚을 해결하고자 은행강도로 돌변했던 사건을 기억한다. 그러면 김교수는 왜 은행강도가 되지 않고 자기 부친을 살해했을까?  아마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범행을 쉽게 계획하고 실천할 수 있다는 점, 성사가 되면 쉽게 빚을 갚을 수 있다는 점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김교수가 부친을 살해하기로 결심한 배경에는 그 나름대로의 합리화가 존재해 있음을 가정할 수 있다. 이 가정을 뒷받침하는 사실이 한가지 발견되는 바, 그것은 김교수가 최근 부친의 유언장에서 자기가 재산상속권에서 제외되었음을 발견했다는 점이다. 그는 아마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아버지는 사람도 아니다. 어떻게 그 많은 돈을 장남인 나에게 한 푼도 남겨놓지 않고 금용학원에 몽땅 기부할 수 있는가! 내가 요즈음 투자한 사업에 실패해서 파산위기에 놓여있는 것을 뻔히 아시면서 어떻게 일전 한푼 유산상속도 안해 주실까. 그런 부모는 부모도 아니다. 죽여도 후회하지 않는다」

 김교수의 이러한 자기 합리화는 유산상속의 한국적 풍토에 비추어보면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자고로 한국부모는 뼈빠지게 일해서 평생 모은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을 자기의 해야할 역할로 간주해 왔고, 반대로 자식은 유산이 자기에게 상속될 것을 당연시 해왔다. 이러한 풍토속에서 김교수가 부친의 유언장을 보고 그에게 섭섭한 마음을 느꼈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김교수의 사건에서 안타깝게 느끼는 것은 그가 우리나라의 최고 지성인이라는 사실에 있다. 학업도 제대로 이수하지 못한 무지몽매한 졸부의 아들이 그의 부친이 유산상속을 거부한다고 해서 그에게 행패를 부렸다고 한다면 우리는 어느 정도 한국의 유산상속의 문제점, 가계계승을 중요시하는 유교이념의 부작용을 거론할 수 있다.

 그러나 김교수는 최고학부를 졸업하고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엘리트 중의 엘리트이다. 그는 외국에서 재벌들이 어떻게 그의 부를 사회에 환원하고 재벌 자식들은 부모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기 나름대로 독립해 나가는지를 생생하게 목격했을 것이다.

 이제 유산상속제의 전근대적인 개념은 바뀌어져야 한다. 재벌들은 가급적 축적된 부를 사회에 환원해야 하고 재벌의 자식들은 홀로서기를 시도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재산상속은 일반 가정에까지 확산되어야 한다.

 한국인들은 가계계승의 집념 때문에 자식을 과보호하는 경향이 있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자기를 희생해가며 자식에게 무리한 과외공부를 시키고, 무리한 혼수감을 마련하고, 과다한 아파트를 사주는등 비이성적인 자식사랑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러한 과보호적 사랑은 자식을 버릇없게 만들고 부모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의존적 사람이 되게 한다. 물론 과보호적 사랑만이 최근에 우리가 연달아 보게 되는 부모살해의 원인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개인주의를 배경으로 한 오늘날 우리의 황금만능주의는 삼강오륜을 공염불로 만들고 있다.

 덕원여고 김형진이사장이 어떤 인물인지 인물평을 하기는 어렵지만 그의 유언장 하나로 미루어 본다면 그는 우리 사회의 귀감이 될 존재이다. 그리고 김교수는 재산상속을 하지 않는 그의 부친을 증오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를 자랑스럽게 여겼어야 할 것이다. 유산상속의 현대적 의미를 깨우쳤어야 할 김교수가 전근대적인 유산상속의 틀 속에서 자신을 옥조이게 했다는 사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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