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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족한 미사회 탐욕의 이면 파헤쳐/(박흥진의 명감독열전: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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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족한 미사회 탐욕의 이면 파헤쳐/(박흥진의 명감독열전:25)

입력
1995.03.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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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글러스 서크 더글러스 서크(DOUGLAS SIRK·1900∼1987년)는 신파극과 동의어라 불릴 정도로 화려하고 흥미진진한 멜로드라마를 양산했던 감독이다. 그의 대부분의 걸작 멜로물은 서크가 유니버설사를 위해 일할때(1950∼1959년) 만들어졌다. 「찬란한 집념」 「하늘이 허락하는 모든 것」 「간주곡」 「때묻은 천사들」 및 은퇴작품인 「인생의 모방」등이 그런 영화들이다.

◎총·석유·섹스·편견으로 얼룩진 멜로물의 대가

 그 중에서도 특히 「바람 위에 쓰다」(WRITTEN ON THE WIND)는 신파극의 범주를 넘어선 걸작 사회비평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은 궁극적 멜로드라마이다. 동네 이름마저 자기가족의 이름을 따 지을만큼 부와 세력을 축적한 텍사스의 석유재벌 해들리일가의 해일같은 감정의 격동과 삶의 어두운 측면을 암시하는 내밀한 비밀들로 가득찬 이야기이다.

 서크는 이작품을 통해 50년대 중반 기분 좋던 미국사회의 후줄근한 분위기를 파뒤집어 놓으면서 겉으로는 화사하고 풍족하며 걱정없는 것 같은 미국가정의 구린 것들을 야하도록 노골적으로 까발리고 있다.

 연로한 가장인 석유재벌 재스퍼에게는 카일(로버트 스택)과 메릴리(도로시 말론) 남매가 있는데 카일은 방종한 술꾼이요 메릴리는 색정녀이다. 그래서 재스퍼는 어렸을 때부터 키우다시피 해 양자나 다름없는 성실한 미치(록 허드슨)를 카일보다 더 믿고 회사일을 맡긴다. 여기에 뉴욕의 아름다운 광고회사 여사원 루시(로렌 바콜)가 카일과 미치의 사랑의 대상으로 등장하면서 애증과 죽음의 멜로드라마가 격렬하게 엮어진다.

 서크에게 있어 아메리카는 총과 술과 춤과 석유, 그리고 섹스와 스포츠카와 개인 비행기가 있는 멜로드라마 그 자체였다. 그는 미국을 위선과 인종편견, 그리고 물질적 탐욕과 도덕적 득의의 안식처로 표현했다. 그는 해들리일가의 과다한 부의 유독성 산물들인 알콜중독, 남매간의 질투, 성적 방황, 불임 그리고 협박과 살인같은 것들을 드러내 보임으로써 전후 풍족한 미국사회를 가차없이 기소하고 있다.

 서크의 신파극이 단순한 감정이나 누선 자극제의 범주를 넘어서는 것도 바로 이같은 까닭에서다. 서크의 신파극은 겉으로 보면 번쩍거리는 분위기 속에 멋있는 남자(록 허드슨은 서크의 신파극에 여덟번이나 나왔다)와 시련을 앓는 아름다운 여인(제인 와이먼 로렌 바콜 라나 터너 도로시 말론등)이 나와 울고 짜고 사랑하고 미워하면서 감정을 흥청망청 쏟아 놓고 있다. 그러나 그 안을 들여다 보면 아메리칸드림의 어둡고 냉소적인 탁류가 흐르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서크에게 있어 위대한 번영이라는 아메리칸드림은 사실 그 꿈의 하복부에 숨어 있는 악몽을 덮은 엷은 위장에 지나지 않을 뿐이었다. 바람 위에 쓴 것처럼 쉽게 날아가 버릴 수 있는….

 독일태생의 서크는 10대 때부터 미술과 법과 철학과 드라마를 공부했다. 20년대 성공적인 연극제작자요 연출자로 명성을 날리다 30년대 영화로 전환했다. 좌경적인 그로서 나치의 압력을 피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첫영화 「4월 4월」(35년)부터 강렬하고 광채나는 감정적 스타일과 시각미를 선보였다. 39년 할리우드로 건너와 한동안 싸구려 영화들을 만들었다. 50년 유니버설과 계약을 맺고 멜로물을 만들면서 빛을 보기 시작했다.

 서크는 시각스타일 때문에 뒤늦게 프랑스 비평가들에 의해 먼저 재발견됐다. 미국 비평가들이 그를 재평가하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들어서였다.<미주본사 편집국장 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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