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적 인간의 고통·희망 아이들이 수를 세는 방식이 『한놈 두시기 석삼 너구리 오징어 육개장…』이라면 『한놈 두놈 삑구 타고 민들레 찧다 짜리 떴다 뚱 땡』하는 것은 각설이패의 방식이다. 일제시대 각설이패와 무리지어 다니다가 어느 섬의 갱생원으로 흘러 들어온 불치병환자 달수 낙중 호준. 삶의 한계에 이른 그들에게도 장난과 다툼, 기다림이 있다. 수 세는 방식은 다르지만 하나 둘을 세는 것과 같이.
『나는 너희같은 문씨들과 달라. 난 개비짱(왕초)이야』라고 우겨대는 달수 앞에 낙중과 호준은 기생처럼 다가와 호들갑을 떤다. 어떻게 해서든 악극단에 뽑혀 순회공연을 나가보려고 평양각설이로 분한 이들의 연습장면은 관객의 폭소로 떠내려 갈 지경이다. 작업량을 못 채우고 밖에서 벌을 서는 겨울밤이면 일본군을 8명이나 죽인 창수형을 기다린다. 오늘밤에라도 오겠지 하다가 오늘도 오지 않는 창수형은 그들의 「고도」다. 그러나 생체실험용 주사를 맞은 줄도 모르고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낙중과 바다를 헤엄쳐 도망가려는 달수의 뒤에 호준은 혼자 남는다.
연출가 황백의 수 세기는 「아픔을 아픔 그대로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1년에 한번 양로원에 찾아가는 사람이야 괜히 미안하지만 노인들은 그저 어제와 다름없이 살아간다. 절망만큼의 희망이 있고 이 때문에 더욱 절실한 인간의 모습을 그렸다』고 말한다. 직장인 김원경(26)씨는 『재미있게 보다가 마지막에 눈물이 핑 돌았다』고 말한다.
작가 이만희의 감칠맛 나는 대사는 아이들처럼 천진함을 연기하는 세 사람의 조화 속에서 소화된다. 극에서 반복되는 대사는 『한놈 두놈 지프차 타고 작부랑 놀아나다 경찰 떴다 뚱 땡』이라는 뜻.<김희원 기자>김희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