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처절한 유랑사/다섯가족의 역정 절절한 고백/민족·조국의 미 진지한 되물음 일본서 활동하는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72년에 일본 최고 문학상인 아쿠타카와(개천)상을 받은 재일한국인 작가 이회성(60)씨의 근작 소설「백년의 나그네들」이 번역돼 나온다. 프레스빌은 지난해 10월 일본서 발표돼 재일외국인 작품중 최초로 노마(야간)문학상을 수상했고 「94 올해의 소설」로 선정된 이 장편을 작가 김석희씨(43)의 번역으로 곧 출간한다. 번역판의 제목은 「백년동안의 나그네」.
이씨는 「백년…」에서 격동의 최근세사와 현대사를 살아온 한인들의 찢겨진 삶을 통해 이전부터 그가 천착해온 조국과 민족의 의미를 진지하게 묻고 있다. 태평양전쟁후 일본을 점령한 미군정의 외국인 강제송환령에 의해 사할린서 나가사키켄(장기현)의 하에노사키(남풍기)로 밀려가는 조선인 다섯 가족과 한 남자의 짧은 역정을 다룬 이 소설은 그의 어떤 다른 작품보다 더 자전적 요소가 강하다. 사할린서 태어나 아버지를 따라 일본으로 넘어온 그가 보고 느낀 아버지와 가족의 인상이 작품 구석구석에 드러난다.
일제가 조직한 협력단체인 협화회 마오카지부 부회장을 맡았으며 포악한 성격과 무관심으로 아내를 죽게 만들고 아들 준호의 증오대상이 되는 박봉석, 열여섯에 정신대라는 이름으로 강원도 고향마을을 떠나 오사카의 공장에 배치됐다가 가라후토 탄광촌의 포주집까지 끌려간 박봉석의 후처 김춘선의 역정에는 재일한인의 기회주의적인 삶과 타력으로 부서진 인생이 등을 맞대고 있다. 후덕하고 자상한 일본인아내를 둔 유재근은 3·1운동에 간여했다가 도망다니면서 부산을 거쳐 시모노세키로, 사할린으로 흘러 들어왔으나 20년만에 강제송환이라는 명목으로 조국을 찾아가는 사람이다. 탄광 노무반장을 맡았던 이재길과 징용으로 끌려가 광원생활을 했던 주두홍은 처지가 달랐던 만큼 싸우고 증오하는 사이다.
반일 지하운동을 하던 아들을 두고 사할린을 떠나는 최요섭목사 부부, 건달 서만철과 처 아야코등 조선인 20명은 송환선을 타려고 수용소에 임시로 머무른다. 그러나 조국분단의 소식이 들려온다. 북한출신인 박봉석과 일본인아내의 만류에 따르는 유재근은 남고 나머지는 송환선을 타기 위해 불안한 희망을 안고 떠난다. 작품은 역사라는 뒤엉킨 광장에서 이국인 아닌 이국인으로 살아가는 조선인들을 진솔하게 묘사해내고 있다.
프레스빌은 「백년…」의 출간에 맞춰 4월중 이씨의 방한을 추진하고 있다. 72년에 한 차례 내한한 적이 있는 그는 92년에도 「유역」 번역출간 당시 재차 방한하려 했으나 정부가 「조선」으로 돼 있는 국적을 문제삼는 바람에 좌절한 경험이 있다. 이회성씨는 70년대의 격동하는 한국정치사를 다룬 「금단의 땅」과 30년대 이후 연해주, 사할린, 중앙아시아에 걸친 우리 민족의 삶을 장대하게 다룬 「유역」으로 친숙하며 재일 외국인으로는 드물게 일본문단을 대표하는 작가로 손꼽히고 있다.<김범수 기자>김범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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