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예측없이 논쟁만 가열/학계/성장 감안 2000년엔 4배 필요/법조/외국과 단순비교 섣부른 판단 법조인력 증원논쟁은 결국 「법조인이 부족하다면 적정 숫자는 어느 정도인가」라는 문제로 귀결된다. 이 문제는 판·검사보다는 변호사의 적정인원에 초점이 맞춰진다.
요란한 논쟁에 비해 「적정 변호사수」에 대한 깊이있는 연구나 합의는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우리의 법조인력 규모와 선진외국의 법조인 수를 단순비교한 통계등을 제시하고 있으나 사회경제적 조건이나 사법제도와 전통 토양등의 차이를 총체적으로 고려한 비교는 없다. 이때문에 각기 자기 주장에 따라 자의적으로 외국의 예를 인용하는 형식이어서 논쟁이 겉돌고 있는 형국이다. 90년 총무처의 설문조사에 의하면 법원과 검찰은 사법시험 선발인원을 현재의 3백명선에서 1백50∼2백명선으로 줄이자고 주장했다. 반면 법학계는 현 수준 유지나 5백명선으로의 증원을 주장했다. 대한변협은 커트라인제를 도입할 것을 주장, 사실상 감축 의견을 냈다.
5년이 지난 현재 이 주장은 크게 달라졌다. 학계는 2천명선으로의 대폭 증원을 주장하고 있다. 법원과 변협도 증원 필요성에는 동의하고 있다. 3월 현재 전체 법조인 수는 법관 1천2백62명, 검사 9백87명, 변호사 2천9백90명을 합쳐 5천8백82명이다. 부산 경성대 한상희 교수는 최근 논문에서 『15년후인 2010년을 기준으로 변호사만 3만∼3만5천명이 필요, 단계적으로 매년 1천2백∼2천4백명의 변호사를 배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숭실대경제학과 조우현 교수는 경제규모와 성장속도를 감안해 2000년의 적정 법조인 수는 지금보다 4배가량 늘어난 2만7천8백여명이라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증원폭을 적게 잡는 학자들은 현재의 3배가량인 매년 8백∼1천명선을 주장한다.
사법부와 변호사계는 법조인력 수요를 정확히 예측, 점진적 증원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사법개혁이 「사법실험」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과잉공급의 부작용을 고려해 단계적으로 선발인원을 조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박찬운 변호사는 『법률문화가 다른 선진국과 변호사 수등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필요한 것은 우리의 이상적 법조 모델을 마련, 이에 따른 법률수요를 정확히 예측하는 작업』이라고 강조한다. 여기에는 법무부도 조심스레 동조한다.
결국 이 논쟁은 정부가 사법개혁안의 골격을 짜면서 법조계가 지지하는 현행 제도의 개선과 학계가 원하는 미국식으로의 전면개혁중 어느쪽을 택하느냐에 따라 결말이 날 수밖에 없다. 법조계는 정부가 합리적 선택을 한다면 사법시험 선발인원을 매년 5백∼8백명 수준으로 조정하는 선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그러나 정부의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에 주목하는 이들은 파격적인 「2천명선」으로의 증원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김승일 기자>김승일>
◎대폭증원도 문제있다/변호사는다고 수임료 하락 보장못해/GNP규모로 따지면 법조인 적지 않은편/과다경쟁땐 불필요한 소송 폭주 가능성도
법조인 대폭증원에 반대하는 법조계는 「밥그릇 지키기」라는 비난에 몰려 있다. 그러나 실제 법조계도 어느 정도 증원이 필요하다는데는 동의한다. 문제는 증원의 폭과 방법으로, 당장 법조인 수를 대폭 증원하는 것은 개선은 커녕 오히려 더 많은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는 것이 법조계의 대체적인 견해다.
법조계는 먼저 현재의 법조인력이 획기적인 증원이 필요할 정도로 부족하다는 주장에 회의를 갖고 있다. 법조인 수만을 비교하면 선진국과 차이가 크지만, 나라마다 다른 법조인 구성을 고려하면 형편없이 적은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 법조인의 대다수가 판·검사와 소송업무를 주로하는 변호사인데 비해 외국은 다르다. 독일만 보더라도 법조인 8만여명중 절반이상이 행정부 공무원이며, 기업과 금융기관에 각각 1만5천여명, 6천여명이 진출해 있다.
외국에서는 변호사들의 고유업무인 각종 법률관련 업무를 나눠맡고 있는 유사법조인의 존재도 무시할 수 없다. 우리의 유사법조인 수는 법무사 2천8백97명, 변리사 3백19명, 세무사 3천1백33명, 관세사 4백32명, 행정서사 4천명, 공인중개사 1만3천7백97명등 2만4천5백여명으로 개업변호사의 10배에 가깝다.
법조계는 법조인 수를 제대로 비교하려면 인구대비보다는 경제규모를 따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92년 대법원자료에 의하면 우리의 GNP 1억달러당 법조인수는 1.97명으로 일본의 0.56명보다 오히려 많다. 미국의 14.64명, 독일의 5.86명, 프랑스의 2.49명과 비교해도 인구대비때에 비해 격차가 훨씬 줄어든다.
여기에 유사 법조인을 합치면 GNP 1억달러당 법조인 수는 6.12명으로 미국보다는 적지만, 일본 독일 프랑스보다 오히려 많다.
변호사 보수를 비교하는 방식에도 결함이 있다. 변호사 수임료를 둘러싼 문제가 많은 것은 인정하지만 「미국의 3배, 독일의 10배」라는 주장은 터무니없는 수치라는 것이 법조인들의 주장이다. 변호사 보수기준은 나라마다 다르고 실제 수입을 파악하기도 어려워 각국의 수임료를 비교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형사사건의 보수만 보더라도 독일은 심급별로 정액화돼 있는 반면, 일본은 하한선을 두고 있고 미국은 시간단위로 계산한다.
한층 중요한 것은 「변호사를 대폭 늘리면 과연 보수 수준이 낮아지겠느냐」는 의문이다.
전세계 변호사의 절반이 몰려 있는 미국은 변호사 보수역시 세계 최고수준이다. 「공급이 늘면 가격이 떨어진다」는 경제법칙이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물론 미국은 변호사수가 많은 만큼 「값싼 변호사」도 많다. 그러나 법률서비스의 질은 결국 얼마나 많은 돈을 지불하느냐에 달려 있다.
LA폭동의 시발점이 된 로드니 킹 사건의 경우 시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소송에서 킹은 3백80만달러를 받아냈다. 그러나 변호사비용으로 청구된 돈은 4백40만달러. 승소하고도 오히려 적자를 본 셈이다. 전처살해 혐의로 재판중인 미식축구스타 O J 심슨은 최고의 변호사들을 고용할 수 있는 재력덕분에 일반인들의 유죄심증과는 달리 무죄를 받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변호사가 지나치게 많을 경우 따르는 사회적 폐해가 얼마나 심각한가는 「소송사회」로 불리는 미국의 경험에서 여실히 나타난다. 변호사들의 지나친 경쟁은 불필요한 소송을 부추겨 미국을 「소송대국」으로 만들고 있고 이에 따른 사회전체의 법률비용의 증가는 국가 경쟁력 약화의 주요인중 하나로 꼽힌다. 미국 공화당은 부시행정부시절 댄 퀘일부통령이 주도하는 특별위원회를 만들어 민사소송을 억제하고 배상액에 상한선을 두는등의 법안을 만들어 최근 하원에서 통과시켰다.<현상엽 기자>현상엽>
◎나의 견해/유중원 변호사/수요무시한 법조인수 비교는 무책임/현제도 전제 연50∼1백명은 늘려야
사법개혁 논의는 인권옹호와 사회정의 실현을 대전제로 국가의 절제된 사법권 행사 및 국민의 사법적 편익증진, 신속한 피해구제를 위해 사법제도는 물론 국민과 행정부, 법조의 법의식과 관행을 개혁하는데 초점이 모아져야 한다.
그런데 최근 사법개혁 논의의 화두는 「법조인수가 절대 부족, 변호사 수임료가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높으므로 이를 일거에 해결하기 위해 미국식 로스쿨(LAW SCHOOL)제도를 도입해 변호사시험을 통해 법조인을 대량 배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각국의 법률전통, 법률문화와 풍토, 국민의 법의식, 경제활동규모를 감안한 법률수요를 도외시한 채 법조인수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참으로 무책임한 일이다. 변호사수요는 GNP등 경제지표와 밀접히 관련돼 있기 때문에 인구대비 법조인수보다는 GNP 1억달러당 법조인수가 한층 타당한 비교자료가 될 수 있다. 우리나라의 GNP 1억달러당 법조인수는 1.97명인데 비해 일본 0.56명, 프랑스 2.49명, 미국 14.64명, 독일 5.86명등으로 우리와 법률문화및 사법체계와 가장 유사한 일본보다 우리가 오히려 4배가량 많다. 여기에 유사 법조직역 1만1천5백명을 포함하면 우리나라의 법조인구는 결코 적지 않다.
따라서 현재의 법학교육 및 사법시험제도의 틀을 유지한다는 전제하에 지방화시대의 본격 개막과 세계화 추세에 발맞추고 남북통일시대에도 대비해 법조인수를 일단 매년 50∼1백명단위로 늘린후 수요증가에 따라 확실하게 늘려야 할 것이다.
정부와 기업에 의한 법률수요의 획기적 창출이나 법조계의 중장기 발전모델에 입각한 잠재수요등을 감안한 구체적 실증적인 수요측정조차없이 무작정 매년 몇천명씩 변호사수를 늘리는 것은 대혼란만 초래할 것이다. 법률수요의 개발없이 과잉공급으로 이어지면 변호사들이 소송업무에만 매달리는 우리의 법률풍토에서는 선의의 경쟁대신 이전투구의 양상을 띠면서 브로커가 활개치고 저질법조인이 양산돼 양질이 아닌 「악질」 법률서비스가 제공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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