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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개혁 어떻게 해야하나

입력
1995.03.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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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법제도가 개혁의 수술대에 올랐다. 근대사법제도 도입 1백주년을 맞아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던 법조계는 갑자기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 당혹과 혼란에 빠져 있다. 「사법시험 합격자를 2천명으로 늘리자」는 정부의 발제로 시작된 사법개혁 논의는 법학계와 언론, 특히 여론의 지지를 바탕으로 곧장 각론으로 들어가 백가쟁명식 논란이 전개되다가 뒤늦게 개혁 주체와 절차를 둘러싼 총론적 논쟁으로 이어지는 난맥상을 보이고 있다. 이에따라 『합리적 논의와 검증절차를 거치지 않은 졸속 개악이 우려된다』는 지적도 있으나 정부의 개혁구상은 이미 구체적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국민의 인권보호와 사회정의 실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사법개혁논의의 주요 쟁점과 바람직한 개혁의 원칙 및 방향등을 각계 전문가들의 지상토론을 중심으로 3차례에 나눠 집중점검한다.◎당위성 공감… 주체와 절차엔 이견

 정부의 사법개혁 「드라이브」의 첨병인 세계화추진위는 사법개혁을 중점추진과제로 정해 4월까지 개혁안을 정부에 건의하고, 정부는 각계의 의견수렴을 거쳐 올 상반기중 최종 개혁안을 확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사법개혁의 당위성에 대해서는 누구도 이론이 없다. 그러나 개혁의 구체적 형태를 두고 이른바 「혁명적 개혁론」과 「신중론」으로 갈려 겉보기보다 첨예하게 맞서 있다. 정부의 전면 개혁론에는 사법「제도권」의 재야인 법학계가 대체로 동조하고 있고, 언론도 변호사 수임료를 집중 거론해 뒷받침하고 있다.

 반면 자체 개혁방안을 준비하던 사법부와 변호사 업계는 사법제도의 근간과 토대를 무너뜨리는 파격적 개혁구상이 급속도로 구체화되는 상황에 충격과 우려, 그리고 분노마저 표시하고 있다.

 여론은 국민들의 원성이 깊은 변호사 수임료문제를 앞세워 변호사 대폭 증원, 미국식 로스쿨 도입, 사법시험 폐지등을 주장하는 전면 개혁론쪽에 서있다. 시민단체가 실시한 여론조사의 응답자중 91.9%가 사법개혁의 필요성에 공감했고, 44.8%가 변호사 대폭 증원에 찬성했다.

 그러나 신중론쪽에 선 법관 변호사 학자들은 사법개혁의 필요성을 곧장 대폭적인 법조인 증원과 미국식 제도도입으로 연결하는 논리를 『무책임하고 위험한 발상』이라고 지적한다. 여기에는 「집단이기주의」로 치부할 수 없는 진지한 우려가 담겨 있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이에 따라 『개혁에 앞서 사법체계 전반에 대한 충분한 논쟁과 성찰이 이뤄지지 않으면 대학입시제도처럼 시행착오의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이희정 기자>

◎신중론/박우동 변호사 전대법관/개혁논의에 법조계소외 곤란/“더 좋은 방안 나올수있게 서둘지말자”

 변호사 과다보수문제와 판검사 전관예우 관행등 법조계에 대한 비난 포문이 열리더니 「사법개혁」이란 거대한 공세가 시작됐다. 이 공세는 언론을 통한 「게릴라전」으로 법조계를 묶어 수술대로 끌고 가는 듯한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는 느낌이다.

 사법부는 새 정부가 들어선 뒤 「사법제도발전위원회」를 만들어 개혁작업에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그때 마무리짓지 못한 법조인력양성등 몇가지 중요과제도 점진적으로 검토하게 돼 있다. 그 정도의 사법분야 개혁도 지난날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정도로 급속하게 처리된 것이다.

 그런데 몇달이 지났다고 또 「사법개혁」인가. 어떤 제도가 아무리 좋다고 생각되더라도 「단칼」에 조치해 버릴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고 고집해서는 안된다. 큰 일일수록 신중해야 한다. 시간을 두고 연구해 보면 폐해도 발견되고, 더 좋은 방안이 나올 수도 있다. 이 진리를 누가 부인할 것인가. 마냥 제자리에 머물러 있자는 말이 아니다. 제발 서둘지 말자는 얘기다.

 정부 어디에 사법개혁 작업실이 있다는 소문이 들려올 때만 해도 사법시험 합격자수를 늘리는 정도로 생각한 사람이 많았다. 법조인구가 많은지 적은지, 얼마나 돼야 적정한 것인지, 생각하기 나름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지만 현재의 사시제도 아래서 좀 더 많은 법조인을 배출해야 한다는 발상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사시제도의 폐지, 전문법과대학원 설치등 획기적 형태로 「개혁」의 정체가 드러나고 있다. 사법개혁의 결과가 어떤 형태로 나타날는지 모르지만, 논의를 전개하고 그 매듭을 짓는 과정이 한마디로 걱정스럽다.

 사법개혁의 시발점으로 제시된 법조인력증원의 과제는 상당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같은 개혁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추진하는가 다. 아무리 훌륭한 결론을 내렸다 하더라도 과정이 옳지 않으면 무엇보다도 폭넓은 신뢰를 얻을 수 없다.

 정부의 세계화추진위원회가 사법개혁을 사실상 관장하고 개혁작업에서 법조인들을 배제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크게 잘못된 것이다. 「법조인들에게 맡겨 보았자 집단이기주의때문에 논의만 하고 결론을 미루게 될 가능성이 짙다. 그래서는 국민들의 줄기찬 항의여론을 무마할 수 없다. 법률교육등의 개선문제는 법원조직이나 재판제도의 개혁과는 다르므로 이번에는 정부에서 맡아 처리하겠다」, 이런 이유로 사법부와 변협의 적극개입을 거추장스럽게 여기는 식의 발상은 문민정부이전 지난 날의 경험과 다를 것이 없다.

 과거 사법부조직과 재판자체에 관한 입법조차 당사자인 사법부 몰래 기습적으로 감행된 적이 있었다. 혹시 그런 시절이 다시 온 것인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법조인을 큰 탈없이 탄생시킨 사법시험제도가 무슨 연유로 하루아침에 폐지될 운명에 빠져 버린단 말인가. 그러면 법조인을 양성하는 사법연수원의 존폐문제도 대두되지 않겠는가. 그런데 어찌 법조계가 법률교육등의 개선 논의에서 소외돼야 한단 말인가. 사법부와 변협이 개혁의지를 표명하고 있는 시점에서 정부가 나서 개혁을 주도하려는 것은 떳떳하지 못하고 오만스럽기까지 한 것이다.

 법조인을 매도하는 목청 큰 소리에 장단을 맞춰 먼 앞날을 내다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말기 바란다. 침묵하는 다수의 걱정스런 심정을 읽어야 한다. 사법개혁은 사법부라는 전문기관에 맡기고 정부는 뒷바라지를 해야 한다. 행정부가 사법부를 존중하는 인상을 국민들에게 주는 것이 사법부가 바로 서고, 진정한 사법개혁을 이룰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약력

 ▲경남 함안출생·60세 ▲서울대법대 ▲고시 8회 ▲서울가정법원장 ▲대법관 ▲법원행정처장 ▲93년 변호사 개업(동서종합법률사무소 대표)

◎적극론/김철수 서울대교수/「봉사하는사법」은 시대적 요구/“법학교육개선·법조인수 대폭 늘려야”

 법학교육에 대한 회의와 사법개혁에 대한 여망이 높아 법학교육을 담당하는 한사람으로 송구스럽기 짝이 없다. 법학교육이 국민에 대한 봉사정신을 가진 법조인을 양성하지 못하고 출세주의자 배금주의자만 양산한데 대한 질타로 보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싶다.

 이런 현상은 법학교육자가 정의에의 봉사와 국민에 대한 책임을 강의하는 것을 열심히 들은 사람은 낙방하고, 처음부터 고시학관에만 다니는 사람은 합격하는 사법시험의 모순때문이다. 전인교육을 하는 교실을 외면하고 수험기술만 전수하는 학관에서 법률을 배운 사람에게서 국민에 대한 봉사와 정의에의 헌신은 생각할 수 없다. 이들이 고위직과 일확천금을 노리게 될 것은 불문가지다. 법조삼륜이라는 법관 검사 변호사가 도매금으로 매도되는 것도 사회봉사를 외면, 「국민을 위한 사법」이 아닌 「법조를 위한 사법」으로 전락한 때문이다. 전인교육과는 정반대의 공리만을 배운 결과다.

 5분만에 증인심문과 증거조사를 끝내고 1분만에 선고하는 형사법정 판사들은 하루 30건 정도를 선고해야 하는 가히 살인적인 업무량 때문이라고 변명한다. 이것은 국민의 「무죄추정권」이나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업무량이 과중한 법관을 위해서가 아니라, 재판을 받는 국민을 위해 법관수의 배증이 필요하다. 검사도 업무량이 많아 직접조사는 드물고 서류중심으로 송치하는 경우가 많다. 일부 변호사들도 과다하게 사건을 수임, 정상적 변론활동을 못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법조인 수가 부족한 때문이다. 그러나 사법시험 합격자 수에 대해 대한변협이나 법무부는 2백명, 대법원은 2백50명이 적당하다고 주장해 법조인 수의 억제에 노력해 왔다. 국민의 눈에는 「법조이기주의」로 밖에 비치지 않을 것이다. 법조의 자체개혁에 기대를 걸었던 국민들은 이제 타율적 개혁이라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민이 사법에 접근하는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법조인의 대폭 증원을 요청하는 이상 국민의 공복인 행정부와 사법부 입법부는 따라야 한다. 주권자의 요구를 집단이기주의에 따라 제한하는 것은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것이다.

 법학교수들에게 법학교육개혁은 큰 부담이고 로 스쿨 제도가 전면시행되면 직위를 상실할 수도 있다. 그러나 법조인 전문화를 통한 국제경쟁력 강화, 법조윤리교육의 철저화를 통한 국민에게 봉사하는 법조인의 양성은 시대적 요구이기에 법학교육개혁에 반대해서는 안된다.

 변호사단체도 변호사가 늘면 수임료 인하를 가져올 것이기에 현재에 안주하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동안 국민의 수요를 충족시켰는가를 반성, 국민의 요구를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판검사들도 법조인의 수가 늘어나면 권위가 추락한다고 생각할 지 모른다. 그러나 20∼30대 판사가 67%인 현실은 공정한 재판이라는 사법정의에 역행하는 것이기에 진정한 법조일원화를 해야 한다. 소수정예주의적 엘리트의식에서 벗어나 대륙법의 모국 독일의 「봉사하는 사법제도」를 본받아야 한다.

 근대사법제도를 도입한뒤 1백년간 가장 비민주적인 일본제국주의 철학과 사법제도가 지배하던 것을 이제는 과감히 탈피해야 한다. 전제국가에서 민주국가로 탈바꿈한 독일의 사법제도를 본받아 법조인의 수를 대폭 늘려 입헌주의와 법치주의를 꽃피게 해야 한다. 1백년의 악습을 타파하고 진정한 민주사법을 이룩하고 시민을 위한 법조인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국민들의 사법개혁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혁명적 변혁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을 법학자나 법조인들은 깨달아야 한다.

□약력

 ▲대구출생·62세 ▲서울대법대 ▲독일 뮌헨대(헌법학석사) ▲서울대 박사 ▲서울대법대교수 ▲하버드대 교환교수 ▲한국법학교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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