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엔고의 정치경제학/안병준(한국논단)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엔고의 정치경제학/안병준(한국논단)

입력
1995.03.16 00:00
0 0

 엔화의 급등과 달러화의 폭락은 냉전종식이후 국제정치·경제가 어떻게 재편되는가를 잘 반영하고 있다. 세계는 진실로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되어 외환시장은 밀접하게 상호의존하고 있으나 주권국가와 국제기구가 그것을 관리하는 능력은 약화하고 있기 때문에 환율은 안정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입장에서 볼 때 현재와 같은 환율변동은 경제발전에 좋은 기회도 되고 어려운 도전도 된다. 단기적으로 우리는 미국및 기타 국가들과의 교역에서 향상된 수출경쟁력을 향유할 수 있으나 일본과는 막대한 수입적자를 감수해야만 한다. 장기적으로 우리는 국내에서 산업구조조정을 성공시켜 국가경쟁력을 더욱 강화해야만 만성적인 대일무역역조를 변경시킬 수 있을 것이다.

 엔화가 5일간에 8%가량 올라 미화 1달러는 90엔 이하까지 떨어졌으니 이것은 외환시장이 얼마나 상호 연관되어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 셈이다. 80년대부터 재정및 무역적자를 내온 미국의 달러는 하락했고 자본및 무역흑자를 지속해온 일본의 엔은 상승해왔다. 그러나 갑자기 달러가 전후 최저로 폭락한 것은 미국에서 금리인상 가능성이 없고 그대신 일본으로 환류하는 달러의 양을 감안하여 매일 1조달러를 거래하는 뉴욕등의 주식시장에서 거래자들이 환차익을 노려서 투기를 한 결과 생긴 현상이다.

 여기서 흥미있는 것은 미국연방준비제도의 앨런 그린스핀의장이 의회에서 달러화의 약세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공언한 뒤에야 그 하락이 일시적으로나마 진정된 사실이다. 이것은 환율변동도 미국의 정치적 힘에 의하여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입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엔고를 막기 위하여 외환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았음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공산주의를 봉쇄하기 위해 세계경찰및 중앙은행으로서 온갖 희생을 감수했던 냉전시대와는 달리 미국도 이제 국내문제에 몰두하여 자국이익을 최우선시하고 있다.  때마침 미국경제는 호황기에 접어들었고 엔고의 결과 수출도 잘 되어 대일적자도 줄일 수 있으며 대캐나다및 대멕시코 교역에서도 흑자를 누리고 있다. 일본정부가 협력을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독일은 국내에서 금리를 올리거나 외환시장에 개입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이처럼 경제대국들은 국내문제와 복지를 최우선시하여 국제통화안정을 위하여 필요한 협력을 등한시하고 있다. 한편 미국도 이제는 경제패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되었으므로 최근에 워싱턴 포스트의 칼럼니스트 짐 호그랜드가 지적한 바와 같이 콩알 하나하나를 셀 정도로 외교정책에서 경제이익을 챙기고 있다. 상대적으로 일본과 독일은 흑자국으로서 미국보다 유리한 경제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3대 경제초강국들이 국내에서 실시하고 있는 금리및 통화등에 대한 거시경제정책을 조정하지 않고서는 환율에 대하여 협력할 수 없는 현실이 현국제정치·경제의 실상이다.

 미일독과 기타 서방국들의 안보를 위협했던 소련이 사라진 현세계에서 세계평화와 안정을 위하여 국내 자율성을 희생하려는 나라는 없다. 강대국들 간의 전쟁가능성은 희박해졌지만 기술및 경제전쟁은 더욱 가열되고 있다.  국제통화제도는 미일독간의 삼각체제로 재편되고 있다. 이들의 재무장관과 중앙은행총재들이 완전합의에 도달한다면 정책조정은 가능하다. 그러나 이 G3체제에서 미국도 단독으로 지도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으니 결국 다원주의질서가 형성될 수 밖에 없다. 세계경제도 사실상 달러권, 엔권및 마르크권으로 블록화하고 있다고 하겠다.

 이 추세속에서 한국의 현주소는 어떠한가? 좋든 싫든간에 한국의 국익은 미일과 직결되고 있다는 것을 재삼 상기해야 하겠다. 미국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안보동반자요 최대 수출시장이며 일본은 우방이요 최대수입시장이다. 달러화의 가치가 떨어지고 엔화의 가치가 오르면 오를수록 미국에 대해서 우리의 자동차, 반도체및 철강수출이 증가하지만 일본으로부터는 기계와 중간재를 수입해야 하므로 무역적자와 부채는 더욱 커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볼 때 엔고는 한국경제발전에 유리한 새 기회를 초래할 수 있다.

 엔고현상이 계속될 때 한국은 이 기회를 잘 활용하여 다시 흑자및 채권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반을 튼튼히 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물가를 안정시키고 산업평화를 유지해야 하며 포화상태에 도달한 사회간접자본을 확충하고 산업구조도 과감하게 조정하여 국가경쟁력을 배양해야 한다.

 우선 국내에서 경쟁력있는 정부 기업 및 가계를 착실하게 발전해 가야만 변덕스럽게 전개되고 있는 세계경제의 충격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있는 국제정치·경제의 흐름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거기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우리의 국가전략과 실력을 내실있게 다지는데 온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연세대교수·국제정치학>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