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성이 막힌시대의 침통한 응시 마침 계간지들이 쏟아져 나온 터라 읽을 거리들은 넘쳐나지만 막상 읽고난 뒷맛은 영 개운치가 않다. 새삼 90년대 소설의 위기가 실감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마치 그리려는 것과 있는 것의 분열 속에서 황폐한 현실의 겉껍데기를 자연주의적으로 베끼는 세태소설과 일체의 객관을 버리고 황량한 마음의 풍경이 주인공으로 되는 심리소설로 갈라서 버린 30년대문학의 위기가 새로운 형태로 부활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조성기의 중편「모젤강가의 마르크스」(현대문학 95.3). 마르크스의 생가가 있는 트리어로 가는 기차장면에서 시작하는 이 작품은 트리어여행기라는 층위(층위)아래 80년대 한국의 혁명적 학생운동의 이야기 층위를 둠으로써 90년대의 현실 속에서 80년대를 반추하는 의도를 드러낸다.
주인공 「나」는 원래 학구파였다가 도서관에 뛰어든 운동권 여학생을 구출하고 대신 끌려가는 우연한 체험을 통해 운동으로 경사한다. 그런데 운동권의 핵심서클 운터(UNTER)의 일원인 그 여학생이 현장노동자로서 조직의 명으로 대학에 침투한 가짜대학생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그녀는 결국 무너지니, 안팎의 상황변화 속에서 조락하는 80년대식 운동의 상징으로 선정되었던 것이다.
그후「나」는 타락한다. 고액과외 전문으로 뛰면서「지난 80년대를 총체적으로 담아내는」영화를 감독할 꿈을 꾸지만, 이 또한 타락한 삶을 살아내기 위한 일종의 거짓위안이기 십상이다. 미지의 어떤 것이 전광석화처럼 예고없이, 순간적으로, 느닷없이 우리들의 삶 속으로 침투해 들어와 삶의 진부한 길을 황홀하게 비추었던 80년대의 가능성이 사라진 90년대의 막막한 현실의 풍경을, 구원의 희망없는 그 단테적 연옥을 작가는 침통하게 응시한다. 이 핵심적 이야기를 마르크스의 생가에서 벌어지는 동독인들의 시위장면으로 마감하는 우울한 트리어여행기 속에 교직함으로써 작가는 이현상이 전지구적인 것임을 쓰디쓰게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진지한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의 출구는 막혀 있다. 비본래적 생이 지배하는 현실을 넘어서 본래적 생을 회복할, 「80년대식」을 가로지르는 90년대의 창조적 길은 무엇인가? 이 핵심적 물음이 부재한다면 그것은 환멸소설로 떨어지기 쉽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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