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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D.C(지금이곳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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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D.C(지금이곳은)

입력
1995.03.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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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꼴 된 「지구촌 수도」… 공무원 감원·감봉항의 시끌 임금삭감 방침에 항의하는 3백명의 경찰관들이 시의사당에 몰려와 삿대질과 욕설을 퍼붓는다. 의사당 수위와 경위들도 이에 가세한다. 의사당은 이내 아수라장으로 변해 더이상 의사진행이 불가능하다. 시의회의장은 원만한 회의진행을 위한 경찰의 도움을 청하기 위해 다이얼 911(긴급구조요청)을 돌린다.

 백악관으로 향하던 외국사절의 리무진 승용차가 공무원 노조의 노상시위로 꼼짝을 못한다. 리무진 승용차를 향도하던 교통경관이 경찰차량에서 내려 그저 빙그레 웃는다…. 파산전문 변호사들이 군침을 흘리며 뾰족하게 생긴 워싱턴기념탑 주위로 몰려든다.

 이것은 최근 한 일간지 사회면에 실린 스케치 기사와 시사만화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는 이제 더이상 화려한 「지구의 심장부」가 아니다. 연방청사와 기념관, 대형 박물관등 각종 명소가 즐비한 「워싱턴 특별시」는 머지않아 세계에서 제일 가난한 수도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시재정이 바닥나 파산위기에 직면한 워싱턴시는 문자그대로 외화내빈의 도시이다. 수년간 누적돼온 시 재정난은 급기야 감사원으로 부터 『5월 이전에 보유현금이 바닥날 것』이란 「시한부 파산선고」를 받았다. 하루도 빠짐없이 TV와 신문지면에 등장하는 메리언 베리시장의 곤혹스런 표정은 다름아닌 워싱턴시의 주름살이다. 베리시장과 공무원노조 지도자들의 급여삭감협상이 결렬됨에 따라 노조원들은 이제 작년도 봉급수준에서 12%가 떼인 가벼워진 급여봉투를 감수해야할 처지다. 급여협상에 합의하지 못하면 일괄적 급여삭감을 시행토록 하는 법안을 이미 시의회가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이에앞서 시공무원 1천여명이 일시해고 된 것은 차라리 재정위기 탈출을 위한 미봉의 궁여지책으로 봐야한다.

 베리시장은 연방의회에 수억달러의 추가예산 편성을 호소하는등 시의 도산을 막기위해 안간힘을 기울이고 있으나 공화당주도의 연방의회는 민주당의 베리시장을 냉소적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베리시장은 이 긴급예산을 스스로 「기적의 예산」으로 부르며 SOS를 청하고 있다. 하지만 7억2천2백만달러의 재정적자를 메울만한 기적의 예산이 쉽사리 의회승인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같다. 오히려 의회는 베리시장의 방만한 시정운영을 질타하며 그의 무능을 부각시키는데 혈안이 돼있다. 언론도 협조적이지 못하다.

 워싱턴시가 이처럼 재정고갈에 허덕이게 된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근본적인 요인은 이 도시가 갖고있는 특수한 위상 때문이다. 무엇보다 시의 기능과 책임이 워낙 무거운데 문제가 있다. 주민 75%가 흑인들로 돈줄은 빈약하기 이를데 없는 처지에 주·군·시등 다른 지방자치의 기능을 모두 수행해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시를 먹여살릴 능력이 있는 백인들은 대개가 주거환경이 좋은 버지니아와 메릴랜드등 인접주에 살기 때문에 워싱턴에서 번 돈으로 정작 세금은 다른 곳에 내고 있는 현실이다.

 범죄가 빈발하고 학교교육의 질이 한참 떨어지는 워싱턴시를 피해 중산층 주민들이 대거 빠져나가면서 그만큼 세수가 격감된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버지니아와 메릴랜드의 잘 정비된 도로는 워싱턴시내만 들어오면 울퉁불퉁하게 바뀐다. 비라도 제법 많이 오면 이곳저곳에서 하수도가 넘친다. 시는 돈이 없으니 아스팔트를 다시 깔고 배수시설을 정비할 방도가 없는 것이다.

 「세계의 수도」란 수식어가 무색한 빛 바랜 워싱턴시를 보면서 미국 지방자치의 양면을 떠올리게 된다.<위싱턴=정진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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