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는 개인 또는 집단, 이기적 또는 공익적, 합당 또는 부당, 합법 또는 불법, 온건 또는 과격등 여러가지 성격의 시위를 허다하게 경험해오고 있다. 한때 시위왕국과도 같았던 무절제한 시위의 빈발분위기가 사회적으로 다소 조정되어 가는 듯도 해서 다행한 일로 생각된다. 시위는 민주주의국가에서 국민의 의사표시의 한 방법으로 용인되어 오고 있다. 그것은 내용과 방법에 따라 사회적인 용인 여부와 호소력의 여하가 판가름된다. 민주화과정에서 한때 봇물처럼 터졌던 시위분위기는 아마도 국민의 의사표시가 지나치게 억제되었던데 대한 반동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시위의 악순환과도 같은 양상이 계속되어 왔다.
온건한 의사표시는 홀시되고 수용되지 않는 경향이 있는 반면, 사회안정을 위협하는 과격한 시위는 그것이 불법부당한 것일지라도 정치적 행정적으로 무절제하게 수용되는 경우가 빈번했다. 그 내용이 정당한 의사표시나 요구라고 한다면 아무리 온건한 방법에 의한 것이라 할지라도, 아니 그럴수록 더욱 충분히 존중되고 진지하게 수용되는 정치적·행정적·사회적 신뢰성, 그리고 그 내용과 방법이 불법부당한 것이라면 아무리 강력하고 집단적일망정 용인되지 않는 정치적·행정적·사회적 절제와 체통의 확립이 절실하게 요청된다. 그렇게 될 경우 스스로 합당한 내용과 합법적 방법의 의사표시와 시위가 유도되고 사회적으로 정착될 것으로 믿는다.
그런데 시위장면이 방송이나 신문을 통해서 보도될 때 가장 안타깝고 당혹스럽게 느껴지는 것이 어린이들을 시위에 끌어들이는 사례이다. 어린이들에게 머리띠를 매게 하고 손을 흔들게 하며 등교거부를 시키는 사례등이 눈에 들어 온다. 순진무구한 어린이들이기 때문에 사회적 동정과 호소력이 오히려 더 클지도 모르나 성인들이 적절한 의사능력이 없는 어린이들을 시위세력이나 도구로 이용해서는 안된다. 여러 가지 말을 할 수 있을지 모르나 폐론코 이런 훈련은 어린이들에게 그런 방식으로 시키지 않아도 충분하며, 어린이들을 구김없이 자라게 모든 보살핌을 하는 것이 어린이를 위한, 가정을 위한, 사회를 위한 길이고 성인의 의무라고 본다.
어린이헌장 전문에는 「모든 어린이가 차별없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니고, 나라의 앞날을 이어 나갈 새 사람으로 존중되며, 바르고 아름답고 씩씩하게 자라도록 함을 길잡이로 삼는다」고 천명하고 있다. 나아가 본문 제5조에는 「어린이는 즐겁고 유익한 놀이와 오락을 위한 시설과 공간을 제공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어서 제8조에는 「어린이는 해로운 사회환경과 위험으로부터 먼저 보호되어야 한다」고, 제9조에서는 「힘겨운 노동에 이용되지 말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성인은 성인답게 사회생활을 영위하고 어린이는 어린이답게 성장하도록 성인으로서의 의무를 다해야만 할 것이다.
더욱 놀랍고 비감하게 느껴지는 것은 빈번히 일어나는 부모들에 의한 어린 자녀들의 동반자살사건이다. 극복될 수 없는 어떠한 한계상황에서 부모가 선택한 자살의 길에 어린 자녀를 동반하는 것은, 혹시 자신들이 없는 세계에서의 부모없는 자녀들의 고초와 소외를 예견해서 차라리 선택하는 길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길을 선택하는 부모는 인권의 문제에 앞서 한 차원 다른데서 이를 깊이 생각해야 할 문제이다. 사파의 고초는 그들의 숙명, 그리고 그들이 살아야 할 사회에 맡길지라도, 어린이는 살아야 하고 자라야 한다. 아직 삶에 대한 성숙된 의지나 생사에 대한 선택능력을 갖지 못한 어린이에게 부모에 의한 생사선택의 강요와 강제집행은 결코 있어서는 안된다.
어린 자녀를 남긴채 부모가 자살하는 것은 자녀에게 무책임하기는 하나, 동반자살보다는 상대적으로 책임있는 일이고 윤리적일 수 있다. 부모 자신들의 자살행위 자체도 물론 사회적으로 거부되어야 할 일이지만, 설사 불가불 그와 같은 심경에 도달한다 할지라도 자녀들의 생명에 대해서는 독립적으로 고려하는 성찰이 있어야만 하겠다.
일정한 판단력을 지니는 당사자 상호간에 그 판단의 교환절충을 통해서 이해와 이해가 조정되는 것이어야만 비로소 자유이고 민주적이고 유의한 것이다. 일정한 판단력을 지닌 자가 그렇지 못한 자에게 어떠한 판단과 행동을 타율적으로 강요한다면 그것은 전혀 유의한 것이 못된다. 하물며 성인들의 의지세계를 모르는 어린이들에 대하여 그들의 티없음이 볼모로 된 동반시위나 동반자살등은 사유 여하를 불문하고 정당화될 수 없을 것이다.<한국정신문화연구원장>한국정신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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