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연루 친인척비리가 치명타/믿었던 세디요대통령에 쫓겨나 멕시코 경제부흥의 영웅으로 대접받던 카를로스 살리나스전대통령이 12일 미국으로 망명했다. 한국의 5·6공 권력갈등을 연상시키는 멕시코 전·현직 대통령간의 권력투쟁에서도 역사의 예외는 없었다. 화려한 명성의 살리나스전대통령도 「권력의 칼자루」를 움켜쥔 에르네스토 세디요현대통령앞에선 무참히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살리나스 전대통령의 영욕은 한순간에 교차됐다. 발단은 역시 친인척 비리에서 파생됐다. 지난달 28일 카를로스 살리나스의 친형인 라울 살리나스가 작년 3월 당시 여권대통령후보인 루이스 콜로시오 집권제도혁명당(PRI)의원과 작년 9월 프란시스코 루이즈 마시에우 PRI 사무총장 암살 사건의 배후 주모자로 전격체포되면서부터 살리나스 전대통령의 추락은 시작됐다.
형의 체포소식을 전해들은 살리나스전대통령은 즉각 세디요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당신이 내게 이럴 수 있느냐』고 고함쳤다. 자신의 후보지명에 힘입어 권좌에 오른 세디요에 대한 서운함과 격노가 분출됐다. 하지만 세디요의 반응은 매서웠다. 『당신을 포함한 그 누구도 법위에 군림할 수 없다』고 차갑게 받아쳤다. 지난 66년간 집권당의 위치를 누려온 PRI사상 유례없는 일이었다.
세디요의 정치적 압박이 이후 살리나스 전대통령을 계속 옥죄어들었다. 형의 잇단 정치암살 연루사건에다가 올초 멕시코통화인 페소화의 폭락사태도 전임 살리나스대통령의 실책이었다는 사실이 멕시코당국에 의해 발표됐다. 뿐만아니었다. 멕시코 검찰은 작년 두차례의 정치테러가 『살리나스 형제에 모두 이익이 됐다』면서 라울뿐아니라 카를로스에게도 의혹이 쏟아졌다. 살리나스 전 대통령은 재임당시 이미 라울의 정치테러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묵인한 혐의가 있다는게 멕시코 검찰의 시각이다. 이는 그의 도덕성에 결정적인 치명타로 작용했다.
실제로 차례로 비명횡사한 콜로시오나 마시에우는 개혁성향이 강해, 집권여당내에서 보수파인 카를로스·라울형제의 입지를 위협하는 절대 정적이었다. 특히 마시에우는 살리나스형제 여동생 아드리아나와 이혼, 살리나스가의 가장인 라울의 노여움을 산 게 암살의 원인이 됐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결국 이같은 상황에서 살리나스 전대통령은 이틀간 단식투쟁까지 벌이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지만 더이상 멕시코에 살기가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 미국행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관측통에 의하면 살리나스 전대통령은 가족과 미보스턴에 정착할 전망.
아직까지 살리나스 전대통령의 출국이 세디요대통령 묵인하의 망명인지 아니면 강제추방인지 정확히 밝혀지진 않고있다.그러나 그가 출국하기전 세디요대통령과 회동한 사실에 미뤄볼때 묵인하의 망명쪽에 더 신빙성이 엿보인다.
살리나스의 몰락으로 미국의 입장도 난처해졌다. 비단 세계무역기구(WTO) 초대사무총장으로 그를 강력히 지원해 왔기 때문만이 아니다. 당장 미조야에선 살리나스 전대통령의 주도로 성사됐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당위성과 페소화 위기로 제공될 예정인 2백억달러의 멕시코지원에 대한 회의가 일고있다.
한편 집권초기 농민반란사건과 페소화 폭락사태로인해 한때 바닥권을 헤매던 세디요대통령에 대한 국민지지율도 라울 살리나스의 사법처리를 계기로 최근 70%수준까지 급부상했다.
아무일도 없었다면 지금쯤 WTO 사무총장 자리에 앉아있을 지 모르는 카를로스 살리나스는 이제 기구한 인생유전의 주인공이 된 셈이다.<이상원 기자>이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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