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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병우식」의 일생(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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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병우식」의 일생(사설)

입력
1995.03.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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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사라져 간다. 공수래공수거라고 한다. 인생의 의미와 실상을 간결하게 압축한 말이다. 이만한 이치를 터득하고 거기에 충실하게 살다 간 사람이 이 세상엔 흔치가 않다. 평범한 죽음은 삶의 종말이지만 강렬한 인생의 죽음은 위대한 철리와 교훈을 남겨 준다. 그러한 최후는 결코 헛되지가 않고 보석처럼 빛나는 섬광으로 남는 것이다.

 「공안과의 공박사」는 한 시대의 명의로서 명성을 독차지한바 있다. 의료불모시대의 개척자로서 그의 기여와 공헌은 짧은 찬사로 표현하기엔 너무나 모자란다.

 공병우박사는 단지 명의로서 만족하지 않았다. 고집과 집념과 신념으로 긴 인생을 완전 연소시켰다. 일제때 사무치는 망국한을 가슴에 품고 창씨개명을 강요당하자 스스로 죽었다고 선언하고 소리없이 통곡했다. 이처럼 열화같은 나라사랑은 드디어 한글사랑으로 불꽃을 태웠다.

 안과의 명의는 그리하여 한글타자기의 창안자로 새로 태어났다. 한글타자기 개발에 열중하게 된 계기는 의학서적을 우리말로 번역하기 위해서였다. 아무런 도움도 없이 독력으로 타자기 구조를 연구해 일찌기 1949년에 성공을 거뒀다. 「공병우식」은 한글타자기의 대명사가 되었다. 처음 고성능의 세벌식 타자기를 만들어 보급했고, 표준형 문제로 정부와 대판 싸움을 벌인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다. 그런 가운데서 한글 텔레타이프 점자타자기 한글워드프로세서까지 개발했었다. 한글기계화와 타자기에 대한 선구적 공헌은 이만큼 눈부시다.

 공병우박사의 최후는 차라리 엄숙하다. 가족과 후배에겐 죽음을 밖에 알리지 못하게 했으며 장례절차마저 거부했다. 그러면서 노환으로 장기 기증이 이뤄지지 않자 시신을 해부용으로 병원에 기증한 것이다. 실로 공수거의 실천이 아니고 달리 무엇이겠는가.

 남기고 간 유서의 한마디가 우리네 가슴을 내려친다. 「나는 내식대로 살아 왔다」. 이 얼마나 후회없는 인생의 독백인가. 인생 자체가 「공병우식」이었다.

 명의는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가면서 한글타자기만 남긴 것이 아니다. 그는 인생을 사는 법과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확연하게 알리고 이 세상을 아무 미련없이 하직한 것이다.

 내식대로 살다간 임종 앞에서 그 누구도 허무를 입에 올리지 못할 것이다. 그 이상 보람 있고 뜻 있는 인생을 어디서 다시 찾아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명의로서의 성가도 값지지만 나라사랑·한글사랑을 몸소 실천한 신념의 가치가 더욱 소중하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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