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국제 외환·금융시장은 예상을 크게 웃도는 달러화 급락, 엔화급등의 충격으로 심하게 술렁거리고 있다. 심지어는 이러다가 세계 금융공황으로 이어지는게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요즘 엔고·저달러 행진을 보고 그 변동의 폭이 너무나 큰데도 놀라지만 그보다는 경제법칙의 냉엄함에 새삼 숙연해짐을 금할 길이 없다.
엔고·저달러의 직접적인 원인은 미국의 경상수지적자 지속과 일본의 흑자 누적, 미국의 금리하락 움직임, 멕시코 경제파탄에 대한 미국의 부담, 미국 금융시장에 진출해 있던 일본 돈의 본국환류등 실물적 측면과 금융적 측면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최근 세계 외환시장에서의 하루 외환거래량이 1조달러가 넘는 천문학적인 숫자인데 비해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능력은 겨우 몇십억달러에 불과하니 정부의 환율조정능력이 크게 떨어진데도 그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엔고·저달러의 근본원인은 단순한 외환·금융적인 측면에서보다는 미·일양국의 경제구조와 이를 반영하는 경상수지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미국의 경제구조를 보자. 미국경제를 극단적으로 단순화시킨다면 그것은 하나의 거대한 쇼핑몰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초과소비의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얘기다. 거대한 쇼핑몰과 같은 미국경제는 근본적으로 생산보다 많은 소비를 하고 있다.
그것은 2차대전이후 미국이 누려오던 미국경제의 절대적 위치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미국인은 다른 나라 국민들이 전쟁의 잿더미에서 삶의 터전을 이루기 위해 피땀흘려 노력할 동안에 호사스런 소비생활을 즐겨왔고, 그러한 세월이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이제 미국은 다른 나라 사람들이 값싸게 공급하는 소비재들을 사서 쓰지 않으면 안되는 경제구조를 갖게 되었다.
이것이 미국의 재정적자와 무역적자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최근 미국기업의 경쟁력이 살아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이 재정적자와 무역적자의 해소로 반영될 때까지는 달러화의 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반면 일본은 기본적으로 초과생산의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다. 일본경제는 세계경제에서 하나의 거대한 생산기지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일본인들도 소비를 한다. 코냑도 마시고, 구치 핸드백도 사고, 피에르 가르뎅 양복도 입는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일본은 자동차 가전제품 음향기기 시계 카메라등과 같은 공산품을 국내에서 소비할 수 있는 것보다 몇배나 많이 만들어 세계시장에 내다 팔고 있는 것이다.
일본경제를 단시일내에 세계 최고수준으로 올려놓은 일본국민의 근면함과 검소함은 일본경제에 엄청난 규모의 무역흑자 누적을 가져다주었고, 이 무역흑자의 누적은 끝없는 엔고행진을 몰고와 이제는 일본경제의 숨통을 죄게 되었으니 이것은 또 무슨 역설인가.
일본은 아직도 속마음으로 한해에 1천5백억달러나 되는 무역흑자를 기뻐하고 있고, 그것이 왜 나쁘냐고 반문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경제에서 모든 좋은 것은 대가를 수반한다. 일본을 오늘의 일본으로 만들어준 바로 그 성공요인이 엔고의 근본원인이 되고 있다.
일본의 무역흑자가 지속되는 한 앞으로도 엔고는 지속될 것이다. 지난 20년간의 추이를 볼 때 향후 5년 이내에 엔·달러 환율이 70엔 혹은 그 이하로 떨어질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미국의 경쟁력이 강화되고 있는 반면 일본의 경쟁력이 급격히 약화되어 일본의 무역흑자가 빠르게 줄어든다 해도 멀지않아 달러당 80엔의 환율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닐 것이다.
엔고는 일본의 경제구조를 급속히 바꾸어 놓게 될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일본기업들이 엔고극복을 위해 더 피나는 노력을 기울이겠지만 결국 오늘날 세계를 휩쓸고 있는 대부분의 일본기업들은 경쟁력을 잃게 될 것이다. 많은 일본기업들은 생산기지의 해외이전을 더욱 가속화할 것이며 이것은 일본의 무역흑자가 사라질 때까지 지속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장기적으로 반사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 일본이 경쟁력을 잃게 될 대부분의 산업에서 우리가 적시에 준비만 갖춘다면 그동안 일본기업들이 누리던 위치를 상당부분 한국기업이 누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단기적으로 한국기업들은 일본으로부터 수입하는 부품및 기계류에 대해 더 비싼 값을 지불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일본기업들이 한국보다는 임금이 월등히 싼 동남아등으로 생산기지를 옮기는 경우 한국기업들은 동남아 후발국들의 맹렬한 추격을 받게 될 것이다.
엔고·저달러를 맞아 세계경제의 구조적 변화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 속에서 한국기업이 나아갈 방향을 모색해야 할 때이다.<산업연구원장>산업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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