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구경하듯 읽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봉건적이지만 따뜻한 공동체의 삶이 유장한 말솜씨로 펼쳐지는 「관촌수필」이나, 전쟁과 분단의 상처를 무거우면서도 풍부한 서정으로 그려낸 「마당 깊은 집」, 빈한한 생활과 부정의 박탈감을 통해 유년의 아픔을 그린 「등대 아래서 휘파람」등은 하나같이 「읽는 재미」를 안겨준다. 70년대의 미아리 산동네, 한 지붕 아래 방 아홉개가 있는 「장석조네 집」 사람들의 삶을 읽는 것에도 그런 재미가 있다. 집 옆 고랑에는 시궁창물이 흐르고 아침이면 50명 가까운 식구들이 변소 앞에 줄을 서서 발을 동동 구르는 곳. 가출한 젊은 부인을 이웃 최씨 도움으로 보쌈해 데려오는 오영감, 동생과 부인을 불륜관계로 오해했다가 자살하고 마는 전공 박씨, 몸집이 좋아 프로레슬러로, 부잣집 부인들의 노리개로, 썩은 권력의 꼭두각시로 살다가 행려병자가 되는 광수형, 기지촌의 양공주인 외동딸의 혼혈자식을 키우며 딸이 코쟁이와 함께 아메리카로 떠나기만 기다리는 함경도또순이 아즈망.
도시빈민들의 거칠면서도 고단한 삶을 32세의 젊은 작가 김소진이 다채로운 우리말과 방언으로 감칠 맛 나게 엮었다. 고려원간·6천원<김범수 기자>김범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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