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70년대까지만 해도 행상들이 많았다. 동네의 슈퍼마켓이 없던 시절이니 시장에 가지 않으면 아쉬운 일용·필수품을 골목골목을 누비는 행상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중요한 것들만 골라보면 아침에는 젓갈 생선 두부등 반찬거리 행상, 낮에는 칼갈이 땜장이 굴뚝청소원 잡화행상 엿장수 고물장수등 잡다한 행상, 저녁에는 다시 반찬거리 행상들, 밤에는 묵이나 찹쌀떡 같은 야식거리 행상들이다.
그런데 그들은 독특한 자기만의 노랫가락 혹은 악기소리로 자신을 알렸다. 노랫가락 소리야 독창적인 것이어서 여기에 옮길 수는 없지만 엿장수의 가위소리, 굴뚝청소원의 징소리, 두부장수의 종소리는 아직도 우리에게 친숙하다. 이들 노랫가락과 악기소리는 물론 소음임에 틀림없지만 공해의 소리를 띠고 있지는 않았다. 행상들의 걸음걸이 혹은 호흡에 맞춰졌던 그것은 오히려 삶의 소리, 거리의 음악이라고 할 만한 것이었다.
20, 30년전의 행상소리와 오늘의 행상소리가 다른 점은 무엇인가? 오늘의 행상소리는 확성기, 경우에 따라서는 녹음기까지 사용하기 때문에 엄청나게 크고 기계적으로 반복된다. 또 행상의 호흡이나 걸음걸이와는 관계가 없다. 옛 행상소리는 여러가지 내용을 최소한의 말이나 신호로 압축해서 표현하는 반면(사실 힘이 들어서도 길게 외치거나 두들길 수 없었을 것이다) 오늘의 행상소리는 선전의 내용이 집요하고도 잡다하다. 요컨대 오늘의 그것은 듣는 이의 입장은 관계없이 자신의 관심만을 난폭하게 관철시킨다. 그리고 그 관심이란 시심이 전혀 깃들지 않은 돈벌이의 관심이다. 그러니 그 소리는 소음공해일 수밖에 없다.
행상의 존재가 필요하다면 그들이 내는 소음을 거리의 음악으로 다시 만들 수는 없을까? 확성기를 이용해도 좋다. 난폭하게 크지 않고 기계적으로 반복되지 않으며 집요하게 설명해대지 않고도 어떤 멋진 소리로 자신을 나타내는 신호를 충분히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자신의 관심만을 관철시키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오늘 우리의 거리 소리를 만들려는 자세이다.<이건용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이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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