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의 제왕」 신세/지난달 이창호에 「대왕위」 마저 내줘/동양증권배등 선수권타이틀만 셋 보유 지난 20여년동안 한국바둑계를 석권해온 세기의 승부사 조훈현9단이 「무관의 제왕」으로 전락했다. 조9단은 지난달 24일 한국기원에서 열린 제12기 대왕전 도전 5번기 제4국에서 이창호7단에 패배, 종합전적 1승3패로 마지막 남은 타이틀인 대왕위마저 제자에게 내줌으로써 사실상 무관의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조9단은 현재 공식적으로는 3관왕이다. MBC제왕전과 동양증권배 후지쓰배등 3개 국내외기전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기전은 타이틀보유자가 도전자를 맞아 도전기를 벌이는 형식이 아니라 전년도 우승자라도 1년후에는 다시 본선부터 참가해야 하는 축제형식의 선수권전이기 때문에 명함뿐인 타이틀보유자인 셈이다. 서봉수9단이 93년 무관으로 전락한 후 응창기배(4년마다 개최) 보유자로 대접받는 것과 똑같은 경우이다.
조9단은 이창호7단과 이번 도전기 시즌에 5개 기전에 걸쳐 25번기를 벌이기 이전까지도 대왕타이틀을 포함, 5관왕이었지만 이7단에게 5승12패를 당하면서 대왕과 바둑왕타이틀을 빼앗겼다. 구체적으로 조9단과 이7단과의 전적을 보면 조9단의 입장에서 대왕전 1승3패, 바둑왕전 2패, 배달왕전 3패, 최고위전 1승1패, 기성전 3승3패라는 저조한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이 가운데 유일하게 기성전 도전기에서 호각의 형세를 보이고 있으며 왕위전에서도 도전권 획득이 유력해 타이틀 보유의 가능성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이번 시즌 이7단과의 25번기에서 5승12패라는 성적이 보여주듯이 부진한 상태여서 쉽사리 그의 재기를 점치기는 어렵게 된 것이다.
지난해 사상 최초로 국제기전을 석권하는 위업을 달성하면서 연간 4억원이상의 수입을 올려 최우수기사로 선발되었던 조9단이 이같이 졸지에 무관으로 전락하게 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했던 일. 주요 몰락원인은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듯이 40대에 접어들면서 체력이 급격히 저하된 점. 또 무관으로 전락하다보니 각종 기전의 본선대국이 늘어나고 그에 따라 대국스케줄이 더욱 빡빡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조9단은 이틀에 한번꼴로 공식대국을 치르는 강행군을 계속해 왔다. 천하의 조9단이 하루아침에 무관으로 전락할 것으로 믿는 바둑팬들은 별로 많지 않았지만 어느 틈에 현실로 다가왔다.
재미있는 것은 지난 20년간 한국바둑계의 양웅체계를 구축해왔던 조훈현9단과 서봉수9단의 몰락이 거의 같은 시기에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공교롭게도 서9단은 71년 명인위를 따낸지 22년만인 93년에 무관으로 전락했고 조9단은 73년에 처음으로 최고위를 따낸뒤 역시 22년만인 95년에 무관의 아픔을 겪게 된 것이다. 역시 세기의 라이벌답게 영광도 몰락도 함께 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박영철 기자>박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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