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철강 등 반사이익/경제체질개선 이용 필요 주춤하던 엔고현상이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국제금융시장에서의 엔화 가치폭등으로 3일 국내 외환시장에서 원화의 대엔화환율도 사상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날 금융결제원이 고시한 환율 1백엔당 8백27원79전은 엔고가 기승을 부리던 작년 7월12일의 8백27원73전을 가볍게 뛰어넘은 것이다.
엔화에 대한 원화환율의 급등, 즉 원화의 평가절하는 일단 우리나라 수출전선에 청신호를 밝혀준다. 엔화가치가 오르면 일본 수출상품의 원가부담을 증대시켜 그만큼 수출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국제시장에서 일본과 경쟁하는 한국제품들은 그만큼 가격경쟁력을 얻을 수 있다. 반도체 철강 자동차와 같은 국내간판산업이 바로 엔고의 반사이익을 얻게 될 대표적 업종들이다.
사실 작년말 정부나 민간기관이 내놓은 올해 경제전망에선 「엔고의 종식」이 예견됐었다. 민간연구소들은 엔화의 대미달러환율이 세자리수로 복귀하고 연말께 엔화가치는 달러당 1백5∼1백10엔대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봤었다. 적자폭이 60억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경상수지전망도 이처럼 「엔고가 작년만 못할 것」이란 전제에서 작성된 것이다. 따라서 갑작스레 찾아온 엔고는 무역업계에 큰 희소식이자 나라경제 전반으로도 상당한 무역수지개선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엔고엔 음지도 있다. 엔화가치상승에 따른 일본제품값의 인상은 대일 무역의존도가 매우 높은 국내 업계로선 큰 짐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최근 국내경기호황으로 일제자본재수입이 급증하고 있는 상황이고보면 엔고로 인한 기계류 가격상승은 국내 제조업체의 부담을 오히려 가중시킬 수도 있다. 무역수지는 개선되더라도 대일무역수지는 악화되는, 즉 다른 나라에서 벌어들인 돈을 일본에 갖다 주는 「초라한 결과」도 우려된다.
엔고를 맞은 우리 경제앞엔 두가지 변수가 놓여 있다. 하나는 이번 엔화절상이 얼마나 오래갈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엔고가 장기화하면 모를까 만약 단기급등현상으로 끝난다면 우리경제엔 별 도움이 안될 것 같다. 그러나 현재 외환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일시적 반등이다』란 시각과 『주춤했던 엔고행진이 다시 시작된다』는 시각이 엇갈리고 있는 실정이다.
또다른 변수는 엔고가 장기화할 경우 우리 경제가 이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엔고를 그저 물건을 많이 내다파는 기회로만 보지말고 근본적인 경제체질개선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얘기다. 80년대말, 그리고 90년대초 두차례의 엔고가 찾아왔지만 우리경제는 체질개혁엔 실패했다. 엄밀히 말하면 그런 시도조차 없었다. 무역수지는 나아져도 대일무역의존도는 갈수록 심화하는 지금의 무역구조가 이를 말해준다.<이성철 기자>이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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