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제2광복·통일지향의 원년/이준 열사 기념관 계기 해외독립분관 계획□대담:임철순 문화1부장
최창규(58)독립기념관장은 광복 50주년을 맞아 바쁘고 의미깊은 날들을 보내고 있다. 오래전부터 「3단계 광복론」을 펴온 그는 「광복 반세기 통일 완세기」라는 슬로건 아래 각종 행사와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한말의 대유학자요 의병장이며 순국열사였던 면암 최익현(면암 최익현)선생의 현손으로 잘 알려진 그는 92년 8월 독립기념관장이 된 이래 민족정기 고양과 주체성 확립을 위해 노력해 왔다.
―광복 50년해의 3·1절이 지났습니다. 구조선총독부건물 철거선포식을 보면서 무엇을 생각하셨습니까.
『독립기념관의 자체 행사 때문에 국립중앙박물관 광장에서 열린 행사에는 참석하지 못했지만 감개가 무량합니다. 그 건물의 철거는 50년을 일관해온 민족의 호소이자 우리가 지향해야 할 역사의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3단계 광복론이란 무엇입니까. 올해는 그 3단계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 해입니까.
『3단계 광복론은 강토의 광복, 주체의 광복, 역사의 광복을 말합니다. 1945년에 우리는 강토의 광복을 맞았지만 남과 북으로 갈린 민족이 하나로 되는 주체의 광복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선조의 혼과 생명력을 역사의 실체로 되살리는 역사의 광복으로 이어져야만 완전한 광복을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올해는 그런 점에서 제2의 광복을 맞는 해이며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지향하는 역사적인 해입니다』
―의미있는 기념사업이나 행사가 많겠군요.
『광복절 정오에 열리는 통일의 종 타종식, 중칭(중경)임시정부청사 복원기념식, 해외 순국선열추모제, 이 준(이 준)열사기념관 개관등 크게 4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 이중 통일의 종 타종은 5년째 조성중인 독립기념관의 통일광복의 동산에서 역대 국가원수들과 북한 애국지사 대표, 해외동포 대표 등을 초청, 통일의 종을 치고 3·1운동 당시의 독립선언문과 같은 통일선언문을 낭독하게 됩니다. 선언문은 통일민족대표 33인이 중심이 되어 완성하게 됩니다. 그날 울려 퍼질 종소리와 통일선언문은 선열과 세계 만방에 한민족이 하나가 되었음을 알리는 소리가 될 것입니다. 8월 5∼10일중 열리는 임정청사 복원기념식과 8월1∼5일중 일본 쓰시마(대마도)에서 열리는 면암선생추모제는 해외에서 열리는 뜻깊은 행사입니다. 이 준열사기념관은 한국일보사와 협조, 추진하고 있습니다. 또 앞으로 독립운동의 현장인 중국 미주 유럽 일본등지에 독립기념관의 분관을 설치해 나갈 계획입니다』
―기증받은 광개토왕릉비문 탁본에 대한 연구는 어떻게 진행됩니까.
『그 탁본은 역사의 광복과 밀접한 대단히 중요한 사료입니다. 앞으로 중국 일본학자들을 초청, 공동연구를 할 계획입니다. 나는 단순히 문맥이나 문리로 읽지 않고 민족혼의 눈으로 선조의 혼을 읽고 있습니다』
―독립기념관 주변의 동·서곡 개발은 어떤 상태입니까.
『동·서곡은 독립기념관의 새 명소가 될 것입니다.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단순한 관람에 그치지 않고 주체와 정체성을 발견하고 깨닫는 시설이 되도록 가칭 역사민속마을을 조성할 계획입니다. 동곡에는 미래공간을 조성, 5천년 역사를 바탕으로 미래에 우리의 역사가 어떻게 전개될 지를 생각해 볼 수 있도록 청소년을 위한 민족교육·수련현장을 만들 것입니다. 이미 실시설계가 끝나 건립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서곡에는 장인들이 직접 살게 해 보는 사람들이 생활문화 속에서 역사를 알도록 할 계획입니다. 1천억원 이상 필요한 대규모 사업이어서 민자도 유치해 추진하겠습니다. 완성까지는 3년쯤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데 부분개장해 운영하면서 시설을 마무리하려 합니다』
―관람객이 본격적으로 몰리는 계절입니다. 운영상 달라지는 점은 무엇입니까.
『독립기념관 입장객은 94년 한해에 1백60만명을 넘었고 올들어 5∼6%씩 늘어 하루 8천여명을 헤아리고 있습니다. 92년 개관 이후 전국민의 과반수인 연인원 2천2백여만명이 다녀갔습니다. 현재 전시시설의 교체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관람지 차원을 지양, 민족교육의 현장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한번 갔던 관광명소를 자꾸 가는 것처럼, 불편하고 고통스럽더라도 조상의 산소를 꼭 찾아가는 것처럼 독립기념관을 다시 찾게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교육·안내기능을 확충하려 합니다』
―예산·운영상의 문제는 없습니까.
『운영독립이 절실합니다. 독립기념관의 독립은 제2탄생과 다름없이 중요한 일입니다. 현재 정부로부터 매년 50억원 정도를 지원받고 있는데 20년간이면 1천억원입니다. 제 욕심은 이 돈을 한꺼번에 주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기금으로 독자운영이 가능해집니다. 이곳에 찾아와 강연을 해달라고 요청하는 단체가 많지만 강당시설이 비좁아 아쉽습니다. 현재 2백명 정도를 수용하는데 1천∼2천명이 들어갈 강당이 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입장객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은 무엇입니까.
『독립기념관은 국민들의 집입니다. 자기 집에 들어가면서 입장료를 내게 하는 일이 송구스럽습니다. 역사교육시설이 부족한 점도 송구스러운 일입니다. 요즘도 민족혼이 뜨거운 분들은 성금을 내고 계시는데 입장료를 성금의 연장선상에서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독서와 집필활동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여가는 어떻게 보내고 계십니까.
『우리의 전통사상인 중심사상의 차원에서 온 인류가 처한 인간상실시대의 위기에 한국이 중심이 되어 답을 구해 보자는 취지의 집필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의 사상과 문화에 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화의 힘으로 방법론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휴관일인 월요일에는 강연을 하느라 사실 더 바쁩니다. 1주일에 사흘은 서울집에 가지 않고 독립기념관에서 자는데 그런 날에는 새벽 4시께 일어나 맑은 공기를 마시며 경내 4정도를 운동겸 산책합니다. 조상이 베푸시는 큰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최창규 관장 약력
▲37년 충남 청양 출생
▲62년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68년 서울대 정치학과 박사과정 수료
▲70∼88년 서울대 강사·조교수·부교수
▲71∼89년 순국선열유족회장
▲76∼89년 율곡사상연구원장
▲81∼88년 11·12대 국회의원
▲92년 독립기념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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