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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극장 「키리에:위대한 위증」/이혜경 연극평론가(연극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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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극장 「키리에:위대한 위증」/이혜경 연극평론가(연극평)

입력
1995.03.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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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된 역사의식의 어설픈 고해 광복 50주년을 맞아 과거를 청산하고 역사를 바로잡는 작업이 한창이다. 조선총독부 건물철거 선포식이 열리고 그동안 저명인사로 대접받았던 이들의 친일여부에 대한 재평가가 활발하다.

 그 가운데 『역사에 대한 선입견을 파괴함으로써 관객들이 8·15의 진정한 현재적 의미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라고 약속하는 연극이 공연되고 있어 관심을 끈다. 여인극장의 「키리에:위대한 위증」은 한 대학학생회가 주최한 광복 50주년 기념 모의재판에 끌려나온 친일형사 가네야마의 과거행적을 추적하는 내용이다. 악질로 알려졌던 그가 사실은 애국지사들을 도왔고 그의 고문에 못 이겨 자살한 것으로 알려진 독립투사 한범부는 원래 강도·탈취범이었지만 가네야마의 눈물어린 설득에 감복해서 「위대한 위증」을 하기로 동의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그의 죽음으로 인해 죄의식에 시달리는 가네야마는 가톨릭에 귀의해 참회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단순 강도범을 자살하게 해서 민족의 영웅을 만들려는 가네야마의 모습을 보면서 범법자를 우상화하도록 진실을 조작하는 것이 애국이라는 명분으로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인지, 무엇보다도 역사의 서술에 있어 「위증」, 즉 거짓되게 증거하는 일이 「위대한」이라는 수식어와 공존할 수 있는지 의문을 갖게 하는 작품이다.

 안타까운 것은 작가 이현화가 자신의 관점을 가네야마의 혼돈된 사고와 분명하게 분리시켜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역사적으로 옳지 않은 행적을 보인 인물의 숨은 의도를 보여줌으로써 팸플릿에 있는 그의 말대로 「또 다른 형태의 애국자상」을 만들려고 했다면 이는 심각한 사고의 오류이다. 혹, 그의 의도가 관객들이 가네야마를 거리를 두고 보도록 희화화하는 것이었다면 그것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 극작술에 문제가 있다. 어수선하게 전개되는 상황들, 논리나 사실성이 결여된 인물묘사, 설명조의 대사등은 강유정의 감상적인 연출과 더불어 공연을 지루하게 끌고 간다.

 역사에서 매도된 인물에게 선한 의도를 부여하는 작업은 작품에서 학생들이 말하는대로 「쓰레기 재활용」의 의미가 있을 수 있으나 자기 합리화에 빠질 위험이 더 크다. 우리 현대사에서 원칙보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판결보다는 감정적 용서를 구하는 인물들이 아직도 엄존하며 논란의 대상이 되는 지금 「키리에」와 같은 작품은 자칫 정리를 도와주기보다는 폐기처분해야 할 쓰레기더미를 다시 역사 안으로 끌어들이는 결과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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