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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 열사 기념관 8월5일 개관/순국 88년만에 네덜란드 헤이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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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 열사 기념관 8월5일 개관/순국 88년만에 네덜란드 헤이그서

입력
1995.03.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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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그=한기봉 특파원】 일성 이준 열사기념관이 오는 8월5일 네덜란드 헤이그시에서 문을 연다. 이열사가 순국한지  88년만에 그 현장에 열사의 애국혼을 기리 전할 기념관이 우뚝 서게 된다. 광복50주년을 맞아 공동으로 이준열사기념관 설립을 추진해온 한국일보사와 국가보훈처, 사단법인 이준아카데미는 이달 중순 기공식을 갖기로 하는등 기념관 설립 세부계획을 2일 마무리했다.

 기념관은 1907년 고종황제의 밀명으로 이상설 이위종 선생과 함께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 파견됐던 이준열사가 투숙했던 헤이그시 와건스트라트 124 옛 드용(DE JONG)호텔을 개·보수해 개관된다.

 연면적 1백80평의 3층짜리 이 건물은 네덜란드 교포실업가 이기항(59·사단법인 이준아카데미원장)씨가 사재 20만달러를 쾌척, 헤이그시청으로부터 매입해 지난 2월 소유권 이전을 끝냈으며 개·보수 비용은 전국경제인연합회(회장 최종현)가 기탁한 4억원으로 충당된다.

 기념관은 현재 당구장이 세들어 영업중인 1층을 제외한 2, 3층만 우선 개·보수해 개관된다. 각층에 6개씩 있는 방은 이준실·이상설실·이위종실·한국역사실, 한국문화실, 화란(네덜란드)역사실, 세계평화실, 사무실 등으로 꾸며진다.

 기념관에는 이열사등 3인의 유품, 황성신문·대한매일신보등 각종 국내신문 관련자료, 만국평화회의보등 제2차만국평화회의 관련자료, 한국독립운동사 관련자료등이 전시될 예정이다. 또 이열사의 흉상과 헤이그에 파견됐던 이열사등 3인의 모습이 새겨진 부조도 설치될 예정이다.

 기념관 설립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최근 귀국한 이준아카데미 이원장은 『네덜란드 정부가 갖고 있는 이열사 관련 자료는 실물로 대여받아 전시하기로 이미 승낙을 받았다』고 밝혔다.

◎순국건물 매입 화란교포사업가 이기항씨/“열사의 성지 폐허방치에 부끄러움”/88년 교회추모행사 참석 생애·인품에 감복/“발자취 찾아내 보존하는게 나의 일” 온정성

 이준 열사 기념관이 열사가 가신 지 88년만에 순국현장에 세워지게 된 것은 네덜란드에 사는 교포사업가 이기항(59)씨의 한민족으로서의 수치심에서 비롯됐다. 그의 부끄러움은 사실 자신만의 몫이 아니다. 열사의 의분과 회한이 서린 민족정기의 성지가 한 세기가 다 되도록 폐허속에 묻혀 있었다는 것은 우리 모두의 수치다.

 72년 상사주재원으로 암스테르담에 발을 디딘 후 의류무역회사를 경영하던 이씨와 열사의 「만남」은 88년 서울 중구 남창동 상동감리교회에서 열린 열사추모행사에 참석하면서부터다. 이 교회는 수많은 청년들이 민족자존을 다짐했던 독립운동의 요람으로 열사는 이 교회 전덕기 목사로부터 축복기도를 받고 헤이그로 떠났다. 계몽과 개혁을 외치며 우국충정으로 일관한 열사의 생애와 인품에 감복한 이씨는 자신이 비로소 네덜란드에서 해야 할 일을 찾았다고 한다. 이후 이씨는 열사의 족적을 찾고 이를 온전히 보존하는데 모든 정성과 시간과 재산을 바쳤다.

 그는 4년전 헤이그 중심가 와건스트라트 124 드용(DE JONG)호텔이 열사가 순국한 곳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것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며칠동안 부근을 서성대다 몰래 들어가 본 건물은 부랑자 임시숙소였다. 1층에서는 오래전부터 당구장겸 카페가 영업중이었고 2, 3층은 주인이 없어 폐허로 아무나 묵고 가는 곳이었다. 이씨는 우선 이 건물을 보존해야 겠다고 마음먹고 매입을 추진했으나 쉽지 않았다. 건물 소유주인 헤이그시청측은 잘 응하지 않았다. 이씨는 헤이그시장에게 여러차례 장문의 탄원서를 보내 이 건물의 내력을 알리고 이 건물을 보존하는데 「평화의 도시」 헤이그가 꼭 도와 달라고 간청했다. 헤이그시는 이후 적극적으로 이씨를 도왔고 이 인연으로 열사의 추모제에는 하베르만스시장이 거르지 않고 참석, 기념사를 해 왔다.

 이씨는 열사의 발자취를 하나라도 더 찾아내기 위해 국립문서보관소와 도서관, 신문사, YMCA등을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다. 당시 이준열사등 고종황제의 특사 3인의 사진이 담긴 만국평화회의보와 열사의 순국을 보도한 신문기사등도 입수했다. 91년 이씨는 처음으로 순국현지에서 열사의 추모제를 거행했다. 추모제에는 벨기에 독일등지의 교포 4백여명이 참석했다. 이국을 떠돌던 열사의 민족혼을 비로소 제자리에 모시고 뿌듯한 감회를 느꼈다.

 이씨는 열사의 추모사업을 효율적으로 펴기 위해 93년에는 사단법인 이준아카데미를 설립하고 지난해에는 사재 20만달러를 들여 건물을 매입했다. 그러나 수리비를 마련할 길이 없어 기념관건립사업이 다시 벽에 부딪쳤다. 이씨는 서울을 드나들며 각계에 호소했고 그의 정성은 마침내 결실을 맺었다. 광복 50주년을 맞아 한국일보사와 국가보훈처가 전국경제인연합회의 협찬으로 이 건물을 열사의 기념관으로 꾸미는 사업에 나서게 된 것이다.

 『열사는 캄캄했던 시절 민족의 의를 지켜 준 등불이었고 멈출 뻔했던 민족사의 수레바퀴를 다시 돌아가게 한 원동력이었습니다. 강대국의 불의에 의연하게 포효한 열사는 또한 인류의 양심과 정의를 일깨운 선각자였습니다』

 열사에 대한 그의 숭모정신은 추모사업 열의만큼이나 끝이 없었다.<헤이그=한기봉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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