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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하림의 「독신의 아침」/김인환 고려대교수·문학평론가(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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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하림의 「독신의 아침」/김인환 고려대교수·문학평론가(시평)

입력
1995.03.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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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달할수 없는 것에의 그리움 평론가들은 최하림과 조태일과 이성부를 한데 묶고 그들의 계열에 정희성과 박노해와 김남주까지 잇대어 이야기한다.

 그들을 하나의 계파로 모을 수 있게 하는 근거는 아마도 비판적 시각에 있겠지만, 나는 현실에 대한 비판 이외에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시의 형식에 대한 신뢰를 그들의 공통점으로 지적하고 싶다. 세상이 어딘가 결단나 있는 듯하다는 느낌은 그들의 시보다 요즘의 젊은 시인들―송찬호 유 하 박용하 함민복의 시에 더 강하게 드러나 있으나, 이 젊은 시인들은 정지용과 이용악의 시대를 전후하여 성립된 현대시의 형식을 믿지 않는다. 형식을 가변가치가 아니라 불변가치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조태일과 최하림과 이성부의 시들은 누구에게나 친근하게 읽힌다.

 이들 선배시인들은 그들이 아무리 세상을 부정하는데 어조를 높인다 하더라도 삶도 바꾸고 시도 바꿔야 한다고 초조하게 서두르는 후배시인들보다 좀더 안정된 앉음새를 보여 준다. 중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의 대부분이 머리 속에 그림 그리는 시의 모습과 일치한다는 것은 이 선배시인들의 강점이 되기도 하고 약점이 되기도 한다.

 「창작과비평」 봄호에 실린 최하림의 「독신의 아침」은 국어교과서에 넣어도 무방할 만큼 정돈되어 있는 시이다. <아내가 없는 방은 넓어 보인다> 는 홍희표의 시구마따나 홀몸이라고 느낄 때 수천 번 무심히 지내 보낸 아침도 특별한 경험이 될 수 있다. 상식적 대화가 아니라 순간적 통찰에 근거해야 시가 된다는 사실만은 어떤 현실파시인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시의 화자는 옥수수빵으로 아침을 때우고 마루를 닦는다. 책들을 치우고 의자를 옮기고 쓰레기통을 비운 뒤 구석구석 물걸레질을 한다.

 짧은 서정시에서는 화자와 주인공이 일치되게 마련인데, 최하림의 이 짧은 시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화자가 아니라 바람의 방향따라 흔들리며 안개 속으로 부드러운 가지를 드러내는 버드나무들이고 현관으로 들어와 물살처럼 고이는 햇빛이고 산 밑으로 쓸리는 바람과 어울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소리로 말하며 가는 철새들이다.

 화자는 <그리운 것들이 모두 집 밖에 있다> 고 아쉬워한다. 아무리 몸이 달아올라도 그는 나무와 햇빛과 철새처럼 살 수 없다. 그를 상자같은 집 속에 가두어 놓은 것은 그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도달할 수 없는 것을 그리워하게 되어 있는 사람의 운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시의 화자는 혼란 속에서 조화를 꿈꾸는 우리 모두의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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