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정부가 출범한지 2년이 지났다. 모든 사람을 다 만족시킬 수는 없겠지만 여하튼 사회의 전면적 개혁이라는 기치 하에 과거의 잘못된 관행과 규칙을 고치려 한 노력에 대해서는 그에 합당한 평가가 주어져야 할 것이다. 개혁 추진이 미진하다는 이유 때문에 현정부에 비판적인 사람도 적지 않았지만 오히려 정반대로 개혁의 결과가 가져온 개인적 피해 때문에 현정부를 못 마땅히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은 듯이 보인다. 전자의 비판은 대부분 정책에 대한 직접적이고 공개적인 공격의 형태를 취했지만 후자의 비판은 대부분 정면공격보다는 은밀하고 때로는 외면상 개혁쟁점과는 무관한 형태를 띠면서 정책에 대한 교정보다는 피해를 입히는데 주목적이 있었다는 점에서 차이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새삼스럽게 개혁이라는 말의 개념정의를 한다는 것은 쑥스러운 일이지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원래 불공평하게 만들어져 있던 사회세력간의 경기규칙 자체를 바꾸는 것과 다른 하나는 제법 괜찮은 규칙을 비틀어 경기 자체를 특정세력에 유리하게끔 해오던 관행을 고치는 일이다. 어떤 경우든 개혁의 수혜자와 피해자가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수혜자들에게 돌아오는 혜택은 대부분 일반적이고 추상적이며 또한 효과발휘의 속도가 완만하다. 이에 비해 피해는 대단히 직접적이고 구체적이며 또한 효과발휘의 속도도 대단히 급속하다. 따라서 혜택을 받는 입장에서 느껴지는 고마움의 감격에 비해 피해를 보는 입장에서의 분노감은 대단히 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예부터 많은 사람들이 섣부른 개혁을 통해 얻어지는 친구의 수는 적지만 많은 수의 적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사실 비교적 제3자적 입장에서 개혁정치에 많은 관심을 가져온 사람들은 이러한 까닭에 개혁정치의 피해자들이 제기할 반발이 과연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에 대해 궁금해 하였다. 필자가 보기에 그 반발은 현재 지역감정의 모습을 하고 나타나고 있다. 굳이 이 지역주의 자체에 대해 도덕적으로 옳고 그름을 따지고 싶지는 않다. 잘 되었든 못 되었든 간에 어차피 우리 사회의 독특한 모습일 따름이기 때문이다. 사실 분단상황 하에서 계급 또는 계층간 갈등의 문제가 그 자체의 모습대로 제기되지 못했기 때문에 지역갈등의 문제는 대단히 중요한 사회학적 의미를 갖는 현상이었다.
물론 최근 새롭게 제기되는 지역감정의 문제라고 해서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과거와 달리 그 의미하는 바가 다른 것으로 보인다. 과거의 지역주의가 지역간 불균형이라는 일반화할 수 있는 명제를 통해 표출되었던데 비해 최근의 지역주의는 기득권 상실에 대한 반발이라는 개별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고 따라서 일반론적 명제를 통한 도덕적 정당화가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지역주의의 가장 큰 무기는 각 지역이 갖고 있는 선거에서 동원될 수 있는 표수이다. 따라서 선거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 무기는 커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민주주의를 위한 개혁이 민주주의 그 자체에 의해 발목이 잡히게 되는 묘한 아이러니를 발견하게 된다. 선거가 가까워질수록 개혁의 예봉이 꺾일 것이라는 우려는 바로 이러한 사정을 두고 한 말이다. 하기야 보편적인 인류애를 모토로 하는 사랑의 종교, 자비의 종교도 지극히 이기적 목적으로 이용되는(우리집 아이의 합격을 기원하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남의 집 아이의 불합격을 기원하는 것이 된다는 점에 주목하자) 현실에서 민주주의라고 해서 다를 것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정말로 궁금한 점은 최근 야기되는 지역주의에 힘을 더해주고 있는 다수의 사람들이 과연 상실의 아픔을 느낄 만큼 특권을 누려본 적이나 있는지 하는 점이다. 물론 현실정치가 반드시 물질적 이해관계만이 아니라 「정서」에 의해서도 좌우되겠지만 그 「정서」라는 것이 특정인들의 데마고기(선동)에 의해 과장된 것이 아닌지 또한 궁금하다.
지방화시대라는 구호에 합당하게 지자체선거가 예정대로 치러지게 되었다. 그러나 자주 특수이익들이 견강부회적 명분을 바탕으로 보편적인 것처럼 위장되어 제출·관철되는 현실을 감안할 때 지방자치마저 개별적 이해관계에 의해 악용되지 않을까 두렵다. 이제 민주화도 지방화도 구호로써만 주장될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의미하는 바에 대한 솔직하고 합리적 토론이 필요한 것이다.<서울대교수·국제정치학>서울대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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