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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개혁과 도전(이만갑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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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개혁과 도전(이만갑 칼럼)

입력
1995.02.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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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월24일자 이 칼럼에서 나는 오늘의 한국에서 근본적으로, 그리고 긴급히 요구되는 것은 우리의 과거 역사과정에서 잘못 키워진 의식을 불식하고 새로운 가치관을 확립하는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나만이 아니고 지금까지 적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서 자주 제시되어 온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그런 말을 하는 까닭은 역시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며, 바람직스러운 방향으로 이뤄져야만 만연하는 사회의 악폐를 바로잡고 활기차게 새 시대를 열어 나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식개혁을 해야 한다고 아무리 외쳐봤자 의식개혁이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오늘은 의식개혁의 효과적인 방도로 서로가 감당해낼 수 있는 도전을 한다는 사회공학적 원리의 적용을 요청하려고 하는 것이다.

 세계의 역사를 살펴 본 영국의 대석학 토인비는 인류의 문명이 적절한 수준의 도전이 있는 곳에서 발상하여 꽃을 피우게 되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민주주의는 도전을 긍정하는 생활원리이다. 영국이나 프랑스에서의 민주주의는 왕권에 대한 민권의 도전에 의해서 발전되었고 종교개혁은 낡은 교회의 횡포와 부조리에 대한 도전에 의해서 달성되었다. 

 도전의 미덕은 그것이 정당성을 찾게 하고 실력을 증진시킨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될 수 있다. 도전을 하는 측은 우선 자기가 정당하고 상대방이 부정당하다는 확신에서 행동을 취하게 된다. 그러나 정당하다는 것은 도전의 성공을 가져오는 충분한 조건이 될 수 없다. 거기에는 실력이라는 또 하나의 조건이 따라야 한다. 마찬가지로 도전을 받는 측도 도전에 대항하여 자기를 방어하기 위해서는 자기가 더 정당하다는 것을 설득하는 동시에 힘을 갖고 있어야 한다.

 도전을 받으면 스트레스를 야기하기 때문에 기분좋은 일은 아니다. 도전을 하는 쪽도 상대방에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기 때문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자칫 잘못하여 도가 지나치면 개혁과 진보를 가져오기는커녕 적대적인 갈등을 심화시켜 파국을 초래하기 쉽다. 그러므로 도전에서 우선 중요한 것은 도전의 합당한 수준과 자세일 것이다.

 도전에서 또 하나 고려해야 할 측면은 도전의 리듬, 즉 율동의 문제이다. 사람의 행동에는 리듬이 있다. 사람이 어떤 행동을 취할 때, 첫째로 욕구가 발동하여 그것을 충족시키기 위한 긴장감이 생기게 되고, 둘째로 욕구를 충족시킬 방법이 강구되며, 세번째로 행동이 취해지고, 네번째로 욕구가 충족되어서 긴장이 풀리게 된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도 리듬을 찾아 볼 수 있다. 첫 단계는 문제를 자각하고 제기하는 단계이다. 여기에는 신문·방송의 보도와 지식인, 그리고 관련되는 당사자 또는 대중의 참여가 촉구된다. 두번째 단계는 문제를 검토하고 토론하는 단계이다. 이때 전문가의 공정하고 합리적인 의견제시가 요구된다. 세번째 단계는 문제해결의 방법을 제시하고 그 방법의 적절성 여부를 논의하는 단계이다. 이때 여론이 비등해지고 찬반을 둘러싼 공방전과 시위운동 등이 격렬해져서 감정적인 흥분상태가 고조하게 된다. 네번째 단계는 결론이 지어져서 안정을 되찾는 단계다.

 지도자들은 비상사태에 직면했을 때, 혹은 급속한 발전을 시도할 때 강력한 통제를 꾀한다. 처음에는 선의에서 가한 통제라도 일단 권력에 맛을 들이면 정보원을 봉쇄하고 언론을 탄압하여 독재근성을 노골화하기 쉽다. 그런 예를 역사는 수없이 보여주고 있으며, 해방후의 한국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는 결코 만족스러운 형태의 발전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위에서의 통제와 밑으로부터의 항의가 개발도상국가 중에서는 비교적 조화롭게 작동하여 오늘의 문민정부의 탄생을 가져올 수가 있었다.

 그러나 21세기의 개막을 눈앞에 두고 정부가 지향하는 세계화(그것이 무엇인가에 관해서는 더 활발한 논의가 있어야 하겠지만)를 달성하는 데는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다. 우선 우리는 선진국가 수준의 근대적 국민협동체의 기틀을 튼튼하게 다져야 한다. 그래야만 국가의 지도자는 진정한 국민의 지도자로서 행세할 수가 있다.

 이제부터의 국가지도자는 통공간적인 세계성만 아니라 통시간적인 역사성에 있어서 투철한 안목으로 작성된 청사진을 제시하여 책임성 있고 결단성 있는 자세로 국가를 관리해 나가야 할 것이다. 한편 국민은 국민대로 국민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정부에 대해 언제나 지원을 아끼지 않는 태도를 취하면서 항상 감시와 비판의 자세를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이처럼 국가지도자는 국민에 대해서, 또 국민은 국가지도자에 대해서 언론과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도전의 효능을 극대화할 때, 한국은 새시대에 합당한 가치관을 창조하는 의식개혁을 성취할 수 있게 될 것이다.<서울대 명예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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