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 소용돌이속 한 지성의 고뇌와 사유/39∼40년 당시 쓴것 새로 발굴/초기의 방관자적자세 고백서/참전결심까지 의식변화 “생생” 한 시대를 대표하는 지성은 전쟁을 거치면서 어떻게 변모하는가. 정신의 발전은 어떤 경로를 밟는 것인가. 실존주의철학을 대표하는 사상가 장 폴 사르트르(1905∼1980)의 편지가 새로 발굴돼 출판됐다. 프랑스의 대표적 출판사인 갈리마르사가 「위선의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최근 펴낸 서한집은 그가 앙가주망(사회참여)활동을 활발히 벌이기 이전에 쓴 편지모음으로 파시즘과 전쟁에 대한 소극적 사고의 일부를 보여주고 있다.
책에 실린 편지는 1939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34세로 프랑스 알사스지방 전투에 참가, 이듬해 6월 독일군의 포로가 되기까지 사르트르가 10개월여 동안 썼던 수백통중 일부이다. 보부아르등 가까운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에는 『참전 이전까지는 나치정권과 전쟁의 실체를 잘 알지 못했고 민주주의를 옹호해야 하는 이유에도 회의적이었다』는 당시 사르트르의 생각이 드러난다.
1938년 독일이 체코의 쉬데텐지방을 점령했을 때를 돌이키며 쓴 편지에서 사르트르는 『독일의 유화정책에 찬반을 표명할 수 있는 지적 용기가 없었다』고 고백했다. 당시만 해도 그는 전쟁의 의미를 투명하게 알지 못했으며 자신이 느꼈던 것은 『내 생활이 뒤죽박죽되고 글쓰기가 방해받고 있으며 파리가 폭격받는다는 사실 그 자체』뿐이었다고 쓰고 있다. 다른 편지에서 사르트르는 『전쟁을 해서라도 지켜야 할 민주주의는 존재하지도 않으며 전전사회를 유지하려는 것은 무질서로 되돌아가자는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보부아르를 회상하는 편지에는 참전을 결심할 당시의 대화가 나온다. 『글 쓸 자유를 지키기 위해 나치이데올로기에 반대해 싸울 준비가 돼 있다』고 사르트르가 말하자, 보부아르는 『그러면 시골마을의 양치기는 무엇을 지켜야 하나요』라고 물어 사르트르를 혼란스럽게 했다.
실제로 사르트르는 가까운 곳에서 프랑스와 독일이 포화를 주고 받는데도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자신이 죽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희박하다. 1939년 9월23일자 편지에서 사르트르는 『나는 내가 죽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보부아르가 말하는데 그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나는 죽을 의향이 없다』고 적고 있다.
참전 초기인 1939년 9∼10월의 편지는 주로 전쟁과 파괴, 도덕과 권위등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담고 있다. 『병사의 죽음은 도구의 파괴 정도로 보인다』거나 『전쟁이 우리를 어디로 이끌고 가는가. 일체가 파괴되고 아무 것도 남지 않은 곳으로 우리를 데리고 가는가. 아니다. 파괴는 무화가 아니라 세계를 비인간화시키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번 서한집은 사르트르가 폐암으로 사망한 뒤 3년만에 양녀 아를레트 엘켕 사르트르가 찾아내 출판했던 내용에다 91년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입수한 초기의 편지를 더해 새롭게 묶은 것이다.
사르트르는 30년대까지 평화·금욕주의사상에 기울어 있었고 유명한 일기체 소설 「구토」(1938년작)를 통해 보여주었듯이 전전까지는 존재에 대한 철학적 성찰과 개인주의적 주제에 관심을 가졌지만 2차 대전을 겪고 나서부터 개인의 자유와 인간의 존엄을 옹호하며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자유에의 길」을 쓰며 프랑스 정치운동과 좌익활동에 공공연히 가담했다.<김범수 기자>김범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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